입학사정관제가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입학사정관제가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 노병섭
  • 승인 2009.12.10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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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각 대학이 앞 다투어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고 있다. 지난해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총 4000명을 선발했는데 올해 2만 명으로 대폭 선발 대상자를 늘린다니 기존 선발 방법의 보완이 아니라 획기적인 대입 전형중 하나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정부는 입학 사정관제를 도입하는 대학에 30억 원씩 지원하겠다고 하고 이 예산을 따내기 위해 대학들은 입학사정관 공모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7월, 입학사정관제대 대하여 두 차례 공식 언급하였다. 한번은 충북 괴산고를 방문한 자리에서 “논술도 없고, 시험도 없이 100% 면담만으로 대학갈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하였고, 또 한 번은 7월 말, 아침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대학들이 내년 입학시험부터 논술 없이 입학사정을 통해 뽑고.... 임기 말에 가면 상당한 대학들이 거의 100%가까운 입학사정을......”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러자 대부분 2012년에는 대학들이 이 제도를 통해 신입생을 선발한다고 밝혔다. 지난 4-5년 전 서울대학교가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겠다며 예산 지원을 요청했을 때 정부가 거절한 것에 비하면 놀랄 만한 변화이다.

부작용부터 문제 삼아 제도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얼마 전 특수목적고생이나 각종 경시 대회 수상 학생을 우대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일반계 고등학생 선발 비중을 늘리겠다고 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포항공대가 이번에는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고교등급제를 하겠다고 시사한 것은 ‘3불 폐지’를 위한 명분으로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된다.

당초 입학사정관제는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된 것으로, 수능등급제 도입과 학생부 반영 비중 확대, 그리고 비교과 영역의 입시 반영 등 공교육 정상화 목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이는 고교 교육의 과정과 결과를 대입전형에 반영하도록 하여 공교육을 지원하겠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입학사정관 확대는 대학 자율화와 대입 자율화 의도가 강하게 내재된 것이다.

정부는 ‘대입 완전 자율화’를 추구하면서, ‘3불 정책’을 그 걸림돌로서 생각하였다. 물론 이것은 우수 인재를 싹쓸이 하고 있고 막강한 학벌을 형성하고 있는 소위 명문 대학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입학사정관 제도는 대학의 선발권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입학 사정관은 대학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입학 사정관 제도는 대학을 위해 복무하게 되어 있고, 각 대학들은 입학 사정관제도라는 이름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학생들을 선발하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입학사정관제도를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좋은 제도라면 그 제도가 뿌리 내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면서 장기적으로 서서히 도입하자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입학사정관 제도가 올바로 실행되려면 고등학교에서 교사의 평가권을 강화시켜 내신 성적과 비교과 영역에서 학생에 대한 다양한 평가 내용을 학생부에 담도록 하고, 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대학은 학생부를 적극 반영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입시 경쟁과 서열화가 완화되어야 한다. 이를 하나마나한 소리라 생각하면 입학사정관제는 성공하기 어렵다. 척박한 땅에 씨앗을 뿌린다는 것은 이미 절반의 성공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귤이 탱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음으로는, 고등학교의 평가권과 특성화가 존중되어야한다. 고등학교에서 교사가 평가한 것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지만 대학에 많이 보내는 것이 능력으로 인정되고 거의 모든 고등학교가 입시에 올인 하는 상황에서 고교 특성화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답답한 일이다. 이에 자칫하면 입학사정관에 기준에 맞추기 위해 고교 과정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

아직은 탁상공론식으로 정책의 장단점을 말하고 성패를 판단하기 이르다. 다만 제도의 점진적인 도입과 정착을 통해 잠재력 있는 학생에게 기회를 주고 더 나아가 대입 경쟁을 완화하고,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듯 조심스레 제도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이 땅 모든 학교와 가정이 대책 없이 쑤셔 놓은 벌집이 되는 일은 이제 그만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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