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상 전라북도배구연합회장> 외국인며느리, 우리는 이웃사촌
<서주상 전라북도배구연합회장> 외국인며느리, 우리는 이웃사촌
  • 이방희
  • 승인 2009.12.0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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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4월 4일 한인 1033명을 태운 영국선박 “일포드호”가 큰 고동소리를 내며 인천 제물포항을 떠났다. 그 배에는 고종의 친척, 무당, 카톨릭신부 몰락한 양반 백정출신 동학농민군 전직 군인 등등 참으로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40여일 만에 지구 건너편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낯선 땅에 내린 1033명의 한인들은 섬유와 카펫의 연료가 되는 “에네껜(henequen)”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에네껜, 애니깽은 선인장과에 속하는 용설란의 일종으로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특산물로 가시가 많고 독소가 많으며 밧줄과 카펫의 원료로 재배되고 있었다. 이들이 한 달 반만에 도착한 그곳은 지옥보다 더한 곳이었다. 당시 메리다 지역경제의 중심을 차지했던 에네켄은 용설란의 일종으로 초록색잎의 껍질을 벗겨 낼때 나오는 강하고 탄력 있는 섬유질을 포함하고 있어 선박용 로프와 그물침대인 아마카를 만드는데 이용됬?? 이민 1세들은 모두 어저귀라고 부른 이 에네켄 잎을 잘라 모으는 일(펭카)을 했다. 7등민족으로 대우받으며 하루에 1천개의 애니깽 잎을 따지 않으면 가죽채찍으로 맞아야 했으며 농장주인의 개를 부러할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조선인들은 서서히 죽어갔고 애니깽 농장의 거름이 되었다. 좋게 말하자면 멕시코 첫 이민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들 1033명은 연락이 두절됐고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에네껜 농장과의 계약이 끝나 자유의 몸이 된 1909년에도 한국은 일본과 합방이 되고 말았기에 돌아올 수가 없었다. 이들은 잊혀지고 버려진 존재가 되었고 그렇게 첫 멕시코 이민자들은 역사에서 지워졌다. 애니깽은 우리나라에서 멕시코사탕수수 농장으로가 외화를 벌어 잘 살아 보겠다고 부푼 꿈을 안고 팔려간 한국인 노동자들로 멕시코 이민 1세들을 일컷는 말이었다. 이일은 우리 모두가 잊혀진 과거이고 이제 더 이상 애니깽에 대한 책자도 절판이 되어 책방에는 구경을 할 수 없지만 요즘 한국인들이 쿠바와 멕시코로 관광을 할 때 당시 애니깽들의 생활을 느끼기 위한 관광코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불행한 역사 속에 조상들이 겪었던 생활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너무 아파온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IMF를 겪었고 현재는 IMF때보다 더 어려운 경제난이다고는 말하지만 그래도 동남아지역에서는 아직도 한국은 희망의 나라로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많은 이주여성들이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시집을 와 열심히들 살아가고 있다. 이제 몇 년 후에는 농촌지역의 절반은 외국인며느리들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전라북도 배구연합회에서는 우리조상들이 타국에서 한서린 삶을 살아온 것을 생각하며 외국에서 우리 농촌으로 시집을 와 살아가면서 때때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주여성들의 이웃사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비록 어려운 여건으로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하지만 2006년부터 전국최초로 외국인며느리배구단을 창단하여 각종대회는 물론 음악회, 산업시찰, 세미나, 고향방문 등을 실시하여 이들과 삶의 애환을 함께하며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앞서 애니깽의 한을 언급 한 것은 이제 글로벌시대에 세계는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 우리의 조상들이 모진 일을 겪었던 한을 생각하면서 점점 늘어만 가는 이주여성들에게 우리의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고 이들에게 이웃사촌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길 바란다.





전라북도 배구연합회

회 장 서 주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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