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 발간을 보면서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보면서
  • 황선철
  • 승인 2009.12.0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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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4389명의 ‘친일인명사전’ 발간함으로 민간 차원의 ‘친일 청산’ 노력이 첫 결실을 맺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2004년에 제정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하여 만든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3차에 걸쳐 친일행위자 1005명을 발표하였다.

해방 직후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반민족행위 처벌법’에 따라 발족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가 친일파와 이승만의 방해로 좌절된 것을 생각하면 늦었지만 감개무량하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둘러싼 논란은 뜨거운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쟁점의 핵심은 친일의 기준이 무엇이며, 일제감점기의 냉혹한 현실을 지금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가, 친일을 했지만 과보다 공이 큰 경우에도 친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등이다.

해방 후 친일행위자들은 권력을 장악하였고, 친일에 대한 솔직한 반성을 하지 않은 채 철저히 은폐하였다. 오히려 해방 정국의 분단 상황에 편승해 정권의 하수인으로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자들도 많았다.

일제 시대 특별고등경찰 형사는 독립운동가, 민족지사. 공산주의 운동가와 노동운동가들을 감시하고 체포하고 고문하는 등 가장 악랄한 친일 매국 행위에 종사했지만 아무도 그로 인해 처벌받지 않았다.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시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히틀러 독일과 비시 괴뢰정권에 협력한 사람들을 단호하게 처벌하였다.

‘친일인명사전’은 친일행위자를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원래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자는 것이다. 주관적 판단을 배제하고 객관적 사실에 충실한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없는 대화”라고 하였다.

또한 “과거는 현재로 비추어 보아야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 역시 과거의 조명을 받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과학이든 역사든 인간 세상의 진보(進步)는 현존하는 제도를 조금씩 점진적으로 개선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이성(理性)의 이름으로 그 제도와 그것을 떠받치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가설에 근본적인 도전(挑戰)을 감행한 인간의 대담한 결의(決意)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은 과거와 현재 사회의 대화이다. 이는 민주화운동의 성과이며, 은폐된 진실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의 산물이다. 가치에 대한 역사적 진보다.

이는 보수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확인해 민족적·인간적 가치를 되찾자는 것이다. 왜곡된 역사인식과 가치관의 혼란을 바로 잡자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보수 언론과 학자들은 친일인명사전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했다고 비난한다. 선조들의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 진지한 반성은 없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시치미를 떼고, 질리지도 않는 듯이 궤변을 늘어 놓고 있다.

권력과 자본에 대한 탐욕 앞에서 진실과 정의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 인간의 야만성, 이기심, 권력욕, 독점욕 등은 제도와 문화와 의식으로 절제되고 견제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남용될 수 있다.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을 보면서 인권과 정의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사회는 공존과 상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제 그 가치 평가는 국민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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