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범수 한국농어촌공사 금강사업단 유지관리팀장> 금강하구둑에서의 나의 25년
<최범수 한국농어촌공사 금강사업단 유지관리팀장> 금강하구둑에서의 나의 25년
  • 정준모
  • 승인 2009.11.2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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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예년기온으로 돌아온 상쾌한 일요일 아침, 운동 삼아 한 달 전부터 타기 시작한 자전거의 자물쇠를 풀었다.

집에서부터 약 4km를 달려 시내를 벗어나 군산 내항의 바다가 보이자 바람이 차가워진다.

한숨을 돌리고 아직 푸릇한 잔디와 함께 잘 정비된 연안도로를 따라 자전거 페달을 밟으니 단숨에 금강하구둑에 도착했다.

매일 근무하는 이곳 나의 직장을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한국농어촌공사에 근무를 시작한 지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잠깐잠깐 다른 지역에 근무한 몇 년을 제하고도 족히 25년가량을 금강하구둑과 함께 해왔다.

금강하구둑 건설이 한창이던 때에 식구들을 이끌고 고향인 예산을 떠나 이곳에 정착하였다. 방조제 쌓기, 배수갑문 건설, 최종물막이, 준공식, 배수갑문 폐문과 어민들의 집단농성, 잡상인들과의 전쟁, 깡패 집단에 끌려가 맞은 일들, 금강하구둑의 역사와 고난을 모두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인 것을 자부한다.

준공 후 20년 세월이 흐름에 따라 금강하구둑의 역할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위상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큰 비가 올 때마다 물바다를 면하지 못했던 금강변의 농경지를 수해와 가뭄으로부터 지켜 주었고, 군장국가공단 공업용수 공급의 근간이 되었으며, 전북과 충남의 교통과 문화를 이어주는 다리, 시민과 철새들의 휴식처, 관광명소로서의 역할로 문화, 교통, 관광,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최근 귀중한 선물을 잊어버린 채 환경논리 하나만으로 금강하구둑을 터야 한다는 일각의 목소리에 큰 배신감과 실망을 느껴보기도 했다.

이와 같이 금강하구둑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음에도, 나와 우리 직원들은 매일을 금강하구둑과 함께 묵묵히 생활한다.

퇴근 후나 휴일에도 배수갑문을 제어하는 시스템을 통해 금강호 상태를 수시로 통보받고 확인한다.

연간 300회 가량의 배수갑문 조작으로 금강변의 재해를 방지하고 용수량을 확보하는 일은 기상상황에 따라 수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휴일, 주·야간이 따로 없다.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추진하는 금강 농업개발사업도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 있다.

금강호의 농업용수를 충남 서천, 전북 군산, 익산, 김제까지 보내주는 심장인 대규모 양수장 3개소와 대동맥인 도수로 2조가 거의 완공되었고, 일부 간선과 지선, 2~3단 양수장이 완공되면 금강물이 전북, 충남지역 곳곳에 공급될 수 있어 가뭄의 걱정은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될 것이다.

최근 극심한 가뭄 속에도 일부 준공된 시설을 가동하여 50여km의 용수로를 거쳐 호남평야 곳곳에 농업용수를 공급함에 따라, 올 한해도 풍년 농사를 이룰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 또한, 올 가을, 겨울은 평년보다 부족한 강수량이 예상되기 때문에 부족한 용수를 보충하기 위해 금강변의 양수장은 한겨울에도 가동해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 가족과 함께 이곳 군산에 뿌리를 내린 토박이가 되었고, 금강하구둑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근무하고 있다. 내가 군산의 토박이가 된 것처럼 금강하구둑도 군산의 토박이가 되어 이 지역을 지켜주고 있다.

매일 숨 쉬는 공기의 고마움을 못 느끼듯 우리도 금강하구둑의 고마움을 잊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군산=정준모기자 j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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