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이야기
친구이야기
  • 유춘택
  • 승인 2009.11.2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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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마을에 부모님의 속을 썩이는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친구를 좋아하여 가산을 탕진하였고 이 때문에 어머니는 급기야 몸져눕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꾸짖고, 타이르고, 때로는 체벌로 혼내기도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아들의 일로 고심하던 아버지는 아들의 친구가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일을 꾸몄다.

죽은 돼지를 광목천에 둘둘 말아서 지게에 지고 아들의 친구들을 검증해 보기로 한 것이다. 저녁이 되자 아들을 불러 지게를 지게 한 다음 아들의 친구 집을 찾아 나섰다. 아들이 입에 닳도록 자랑했던 친구들을 차례로 찾아갔다. 아들이 친구를 부르니 반갑게 뛰어 나오자 아버지는 갑자기 아들이 잘못하여 사람을 죽였는데, 어디 암매장 하려고 하니 도와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랬더니, 그렇게 반갑게 뛰어나왔던 친구는 왜 나까지 범죄자로 만들려고 하느냐면서 문을 꽝 닫고 들어가 버렸다. 차례차례 친구의 집을 방문하였지만, 아들은 어느 누구 한 명으로부터도 따뜻한 위로의 말조차 듣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 친구 집에 한번 가보자하면서 한밤중에 아들을 데리고 자신의 친구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니 어떻게 도와줄까 걱정을 하며 누가 볼까 집안 깊숙한 곳으로 안내했다. 아버지는 친구에게 광목천에 싸여있는 삶은 돼지고기를 내놓으며 아들이야기를 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 동네어른들에게 지게에 지고 간 돼지고기를 대접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여러 말을 하지 않고 내 친구 같은 사람을 사귀라고 짧게 말 했다.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가를 교훈적으로 가르쳐 주는, 어렸을 적에 부모님으로 부터 들었던 옛날이야기이다. 내 친구가 내게 어떤 친구가 되는가보다는 내가 그 친구에게 어떤 친구가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을 삶의 현장에서 가끔 떠올리게 된다. 오랜 친구를 찾아보고 싶은 오늘처럼 쌀쌀한 차가운 계절엔 더욱 그러하다.

자신이 친구들에게 어떻게 비춰지는지 다시 점검해볼 연말이 돌아오고 있다. 바쁘게 앞을 향해 달리다 보면 본의 아니게 내게 서운한 마음을 갖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혹시 내가 필요할 때만 그 친구를 찾지 않았는지 뒤를 돌아본다. 온 마음을 다해 친구를 대했는지, 형식적으로 친구를 대했는지, 어려움이 닥치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낙엽이 붉게 물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겨울 초입이다. 오늘처럼 바람이라도 불면 그 차가움이 온몸에 와 닿는다. 날씨가 따뜻하면 외투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처럼 내 삶이 편안할 때는 옛날 친구를 잊고 지내는 것 같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일평생 살아가면서 좋은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친구가 마음속에 있다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세상은 궁극적으로는 서로 믿고 살 수 있는 곳이리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신의의 문제는 친구간의 의리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겠다는 친구들과의 무언의 약속을 가슴에 담고 살아왔다면 친구들은 비록 공간적인 떨어짐이 있어도 내 삶을 응원해 줄 것이다. 나 또한 친구에게, 멀리서라도 내가 보내는 응원을 느끼게 해주는 진정한 친구여야 할 것이다. 어떠한 관계라도 일방적인 관계라는 것은 있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물어야 하는 우리청소년들은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친구를 얻을 수 있을까 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까를 가르쳐주는 어른들이 많아야 할 것이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자신을 낮추는 자세는 친구를 사귀는데 기본이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인간됨됨이이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모처럼 전화라도 걸어 안부를 전하면 그 친구는 얼마나 기뻐할까? 그동안 잘 있었느냐는 한마디의 안부가 친구의 마음을 녹이고 얼음장 같은 차가운 인간세상을 녹일 것이다. 때로는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우정을 믿을 수 있었기에 세상을 믿을 수 있었고, 지난 시절은 모두 그리움으로 남게 되었다고, 친구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엔 따뜻한 인정을 마음속에 가득 담고 사는 사람들이 많고, 그분들을 통해 희망을 본다고 그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이야기를 밤새도록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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