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건국 60주년
중국 건국 60주년
  • 김윤태
  • 승인 2009.11.1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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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중국은 건국 60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행사를 치렀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서양의 침략을 받고 굴욕의 세월을 보내다가 1949년에야 드디어 독립국가를 수립했으니 감개무량할 것이다. 이제 중국은 가난에서 벗어나 강대국이 되었다는 자부심도 생겼다. 그런데 놀랍게도 중국 건국을 축하하는 텐안먼 광장의 행진에는 과거 냉전시절처럼 정치인의 대형초상화가 등장했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장쩌민, 그리고 후진타오의 얼굴이 나란히 나타났다. 이 가운데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두 사람이 중국의 현대사를 이끈 인물로 가장 숭배를 받는다.



중국을 바꾼 두 사람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삶은 서로 많이 닮았다. 중국이 서양 열강에 의해 식민지 상태에 빠진 절대절명의 시기에 자란 두 사람은 청년시절에 중국을 강대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절대권력을 추구했다. 마오쩌둥은 1949년 중화인민위원회 국가주석이 된 후 1976년 사망할 때까지, 덩샤오핑은 1981년 권력을 잡은 이후로 1997년 사망할 때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두 사람의 정치노선과 기질은 매우 달랐다. 마오쩌둥은 좌익노선을 걸으며 계급투쟁과 관료주의 비판을 강조한 데 비해, 덩샤오핑은 실용주의 노선을 걸으며 개혁개방을 주창했다. 두 사람의 가족 배경도 다르다. 마오쩌둥은 중농 집안에서 태어나, 후난성에서 사범학교를 졸업했다. 덩샤오핑은 쓰촨성의 누대에 걸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16세 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가 돌아왔다.

1927년 상하이에서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이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당을 탄압하자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함께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서북부 옌안까지 1만 2500킬로미터에 이르는 장정에 참여했다. 옌안에서 덩샤오핑은 마오쩌둥과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마오쩌둥은 덩샤오핑에게 프랑스 유학 시절에 대해 물은 다음 불쑥 말을 던졌다. "프랑스 여자들이 그렇게 예쁘다던데, 어땠나?" 덩샤오핑은 대답하였다. "별로 대단치 않습니다. 여자란 다 똑같지요, 특히 어두운 데서는 말입니다." 덩샤오핑의 재치 있는 대답에 마오쩌둥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마오쩌둥은 국가주석에, 덩샤오핑은 정무원 부총리에 올랐다.



중국 현대사의 명암

중국의 헌법은 사회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과거 소련과는 매우 다르다. 모든 토지는 국가 소유이나, 개인의 사용을 50년 이상 허용한다. 덩샤오핑이 사망할 즈음 중국 기업 가운데 약 65퍼센트가 사유기업이 되었다. 중국을 더 이상 '공산주의 국가'라고 부르기 어렵게 되었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덩샤오핑의 이 유명한 말은 그의 실용주의 노선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의 집권 이후 기업가와 농민의 이윤 보장, 지방분권적 경제 운영, 엘리트 양성, 해외유학 장려, 외국인 투자 허용 등으로 중국 경제는 크게 성장했다. 1980년대 이후 중국 경제는 연 평균 9퍼센트 수준의 성장률을 보였다. 세계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이다. 이것은 덩샤오핑이 이룩한 개혁개방의 역사적 결과이다.

그러나 덩샤오핑의 중국이 순탄한 길로만 간 것은 아니다. 1989년 베이징의 대학생들은 톈안먼 광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38개 대학교 학생 3만여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정치적 요구를 내걸었다. 연설의 자유, 민주적 선거, 정치범 석방, 부패 관리 엄단, 리펑 총리와 보수파 세력의 축출 등을 요구했다. 마침내 6월 4일 인민해방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톈안먼 광장 주변에 있던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총을 쏘아댔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3만 명의 시민이 군의 발포로 사망했다고 보도했지만, 중국 정부는 300여 명 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는 경제성장을 위한 것일 뿐, 정권에 반대하는 어떠한 시도에는 단호히 대처한다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중국 건국 60년의 화려한 행사 뒤안길에는 민주화를 짓밟은 어두운 역사가 아직도 깊은 그림자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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