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의견은 참고용’
‘국민 의견은 참고용’
  • 김남규
  • 승인 2009.11.18 1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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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를 기업도시로 조성하겠다며 동분서주하는 정운찬 국무총리의 행보가 눈물겨울 정도다.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아닌 기업도시로 만들겠다는 정 총리의 생각이 정말 확고한 소신이기를 바란다. 서울대 총장을 지낸 우리나라의 최고의 명예와 학식을 지닌 분이 정치적 소신 없이 청와대의 바람막이나 하는 총리라면 우리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고 너무 슬퍼지지 않겠는가? 또한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 소신 있는 총리를 한명쯤 만나보는 것이 요즘처럼 각박한 현실에서 국민 된 한사람으로 자부심과 위안을 가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정총리가 며칠 전 전경련 회장단과 만찬을 개최 했다. 기업도시를 조성하기위해서는 기업을 설득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총리가 ‘세종시 투자기업에 상당 수준의 인센티브를 제공 하겠다’고 밝혔지만 재벌 총수들은 "검토한 바 없다" 혹은 "그냥 들어보러 왔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즉답을 피했다. 총리가 그렇게 정성을 들여 자리를 마련하고 인센티브를 주겠다며 설득했으면 빈말이라도 성과를 얻었어야 할 텐데.....,

눈물겨운 일이 또 있다. 정부가 행정구역 통합 여론 조사 결과 통합 대상 지역을 6곳으로 발표 했다가 이틀 만에 4곳으로 번복한 일이다. 경기 안양·의왕·군포와 경남 진주·산청 지역을 제외한 것이다. 그 이유가 행정 구역 통합으로 국회의원 선거구에 영향이 있기 때문이란다. 이들 지역은 여당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가 포함되어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과천·의왕)와 신성범 원내 부대표(산청·함양·거창)의 지역구가 포함되어 행정구역이 통합되면 이들 의원들의 지역구가 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달곤 해정안정부 장관은 한술 더 떠 ‘행정구역 통합 여론 조사 결과 발표는 참고용’이라며 이들 지역을 제외한다고 발표 했다. 지난달 ‘원칙적으로 주민 여론조사 결과 찬성률이 50% 이상인 지역을 대상으로 통합 절차를 진행 할 예정이지만, 찬성률이 50%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반대율 보다 상당히 높은 지역에 대해서는 통합 절차를 진행 하겠다’라고 자신감에 찬 발표와는 정반대로 어이없는 발표를 했다. ‘국민 의견은 참고용’이라는 이장관의 말은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왔던 ‘미실’의 명대사 ‘백성은 무지하고 자유를 버거워하며, 희망은 부담스러워 합니다’에 과히 견줄만한 어록이라 하겠다.

주민 투표 없이 ‘여론 조사’만으로 행정 구역을 통합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지방자치에 대한 근본을 흔들고도 남는 일이다. 주민 스스로 자기 문제를 결정 할 수 없도록 하면서 행정 구역 통합을 ‘자율 통합’이라고 말하는 정부가 정말 가증스럽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막가도 되는 것인지, ‘국민 의견이 참고용’이란 소릴 들으면서까지 통합 논의에 휩쓸려야 하는지 돌이켜 볼일이다.

전주·완주 통합 논의가 주민 여론 조사 결과 전주지역 주민들은 찬성 84.2%와 반대 11.1%, 완주지역 주민들은 찬성 34.3%와 반대 61.6%로 나타나 기나긴 갈등의 종지부를 찍었다. 완주지역 주민들의 충분한 공감대를 얻지 못한 것이다. 결과에 대해서 도내 언론사대부분이 ‘분열과 갈등을 치유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보도하고, 전주·완주 통합에 대한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우리지역 통합 논의가 정부가 했던 것처럼 주민 없는 통합 논의가 되지는 않았는지, 주민들의 마음을 통합하려 들지 못하고 정치적 계산기를 먼저 두드리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말로는 ‘분열과 갈등을 치유’ 한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내년 지방선거의 유·불리를 계산하고, 주민을 정쟁의 도구로 삼아 ‘참고용 주민’으로 만드는 우를 범치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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