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식 전북대 명얘교수> 점점 퇴색되어가는 고향
<홍재식 전북대 명얘교수> 점점 퇴색되어가는 고향
  • 이수경
  • 승인 2009.11.16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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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게 처음 만나 인사를 주고받을 때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예가 많다. 그리고 양 명절 때마다 국민의 절반이상이 고향을 찾아 이동하는데 이들도 잘 알고 보면 우리 마음속에 장재한 고향 사랑의 한 면이라 할 수 있다. 내가 태어나 성장하고 마음과 정신이 자라는데 고장의 기후풍토와 교육의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자기고향에 대한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린 시절 여름에 비가 내리면 개구리는 논에서 짝을 찾노라 밤새도록 울어대고, 개구리 소리와 다른 맹꽁이 소리도 논에서 사는 검은 뜸부기 소리도 이제는 듣기가 어려워졌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 밤이 되어 반딧불이 비치면 이를 잡으러 다니던 그 시절이 그립다.

내 고향 앞동산에는 수십 년 전 상수리나무의 표피에서 흐르는 수액은 곤충들이 좋아하는 먹이로 왕벌과 장수풍뎅이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지금은 환경오염으로 어린 시절 보았던 것들이 점점 사라져가니 아쉽기만 하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눈이 덮이는 산과들을 바라보며 마을 친구들과 눈싸움을 벌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리고 고향에 갈 때면 어릴 때 거기에서 같이 뛰놀던 옛 친구들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그때 그 시절 고향생활은 어려웠고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어디에 가나 흙냄새, 풀냄새가 나고 볏집이나 풀의 더미가 썩어가는 두엄냄새가 나는 곳이지만 우리의 어린 시절의 향수가 담겨져있다.

우리 부모들은 이런 시골에 살면서 자녀를 낳아 길러서 교육을 시켰다. 그런 자녀들이 직장 따라 모두 도시로 떠나게 되었고 직장일에 얽매어 살다보니 양 명절때나 자기의 고향을 찾는게 고작이었다. 우리 부모들이 다 세상을 떠난 지금에는 손자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던 고향을 찾는 일이 거의 없다.

우리세대의 자녀들처럼 도시에서 태어나 사람들은 고향의 평화스런 자연의 이야깃거리들이 없다. 도시네는 소음, 공해, 범죄의 살벌한 도시문명만이 있고 다정다감한 친구와 이웃이 없고 인정이 메말라 있다. 옛 내 고향의 이웃은 같이 웃고, 같이 우는 정으로 연결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요즘은 같은 아파트라인에 살면서도 인사도 없이 지내는 대화가 단절된 외로운 사람들이다. 왜 우리사회가 어른도 이웃도 모른체 살아야만 하는지 매우 걱정스럽다.

요즘 나이든 사람이 느끼는 고독은 깊은 산속에서 느끼는 고독이 아니라 도시의 많은 낯선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독이다. 나이든 사람은 삶에 지쳤을 때 어린 시절 고향의 아름다운 것들을 조용히 그려보기도 한다.

시골 아이들은 홍수가 날때 업어서 하천을 건네주고 보호해줄 어른들이 있으나 도시의 아이들은 오히려 어른들이 해칠 사람이 아닌가를 감시해야만 한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녀들에게 고향에 전답은 없지만 선조들의 묘소가 고향선산에 있으므로 아버지의 고향이 너희들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하지만 정말 고향이란 말이 실감이 날지 모르겠다. 자녀들의 출생지가 모두 전주이기 때문에 사실상 고향을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즈 젊은이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애착이 점점 퇴색하여 너무 인색한 것 같다. 왜 이지경이 되었을가? 물질문명의 발달로 우리인간은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는 대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 아름다운 정취와 낭만, 풍류와 멋은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 물질 만능주의에 노예가 되어 부모도 돈이 있어야 부모의 대접을 받고, 돈이 없으면 부모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물질 만능주의가 고향의 꿈도 없어지게 하고 부모형제의 정도 없어지게 하고 상부상조의 미덕도 없어지게 하였으며 이간 미풍도 송두리째 소멸시키고 말았다.

우리 조상들이 오랜 생활동안 가꾸고 이어온 미풍양속들이 현대의 생활속에서 산산조각이 난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물질이 소멸되는 것은 다시 복구할 수 있지만 정신이 소멸되는 것은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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