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농촌을 포기할 것인가
정말 농촌을 포기할 것인가
  • 이한교
  • 승인 2009.10.2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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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수렁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소를 꺼내기 위해 모여들었던 동네 어른들, 벼 한 포기라도 더 심기 위해 위험스런 수렁배미 안으로 들어가던 노인이, 수확할 벼를 갈아엎었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우리의 삶은 흙으로부터 시작 되었다. 흙은 어머니이며, 호흡할 수 있는 공기이다. 산업화로 좀 잘산다 하여 흙(농업)을 무시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만나게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기본이 있다. 아무리 급해도 콘크리트 바닥에 씨를 뿌려 열매를 얻을 수는 없다. 농업을 외면한 화려한 문명으로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흙에 씨앗을 뿌리고, 태양에너지를 받아 자란 식물을 섭취해야 살 수 있다는 것 또한 진리이다.

지금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농촌엔, 어린아이가 보이지 않으며, 허수아비조차 만들 기력 없는 노인이 논둑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뿐이다. 멀뚝하니 논바닥을 휘졌고 다니는 콤바인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노인이 바라는 농촌은 무엇일까. 차라리 그 옛날 긴 쇠스랑으로 논을 파 엎거나, 마른논에 물을 대고, 망종(亡種)에서 하지(夏至)안에 모내기를 하기 위해 준비하던 일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줄모를 띠며 “앞산은 멀어지고 뒷산은 가까워지고……. 자, 후딱후딱 합시다”라는 추임새로 고된 노동을 견뎌내던 때가 오히려 희망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모내기가 끝나면 잡초와의 전쟁인 고단한 김매기가 시작되고, 10월 하순경이면 벼 베기를 시작하는 일상이 그리울 것이다. 새꺼리 농주의 얼큰함으로 허리가 부러지는 아픔을 견디며, 볏 다발로 논두렁에 줄갈이를 쳐서 말리고, 어느 정도 건조가 되면 볏단을 지게에 지고 집 마당으로 옮겨 볏가리를 쌓았었다. 유일한 운반수단이었던 지게에 볏단을 쌓고, 작대기로 지게발목을 두드리는 등짐소리에 발을 맞춰 오가던 논둑길이 생각날 것이다. 이듬해 정월이 지나면 품앗이가 시작되고, 아낙들은 각자 홀태를 가져와 마당에 둥글게 자리를 잡고서, 서두리가 볏단을 홀태 옆에 갖다 놓으면 한 움큼씩 잡고 벼를 훑었다. 힘겨움을 잊기 위해 종일 찧었던 입방아 소리가 노인은 듣고 싶을 것이다. 지푸라기는 적당한 크기로 묶어 짚가리를 하고, 필요할 때 허물어 사랑방에 모여 새끼를 꼬거나 멍석, 삼태기, 망태 등 필요한 기구를 만들며 보냈던 농한기, 땔 나무가 없으면 짚으로 밥을 지었고, 아이들은 숨바꼭질의 보금자리인 짚가리가 있어 행복했던 시절, 참새는 볕 알이 붙어 있는 낟가리를 찾아와 하루 종일 노래를 불러 활력이 있었던 농촌을 떠올리며, 노인은 콤바인을 바라보고 있다. 기계가 지나간 자리엔 볏짚이 가루가 되어 논에 뿌려지고, 벼는 건조기에 말려지는 데, 노인은 자꾸만 허리가 부러지듯 아프다고 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농업을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하여 모든 일의 기본으로 여겼다. 이 기본을 버리고 모든 젊은이가 농촌을 떠났다. 농촌이 산업화에 밀리고, 노령화로 외면당하는 현실을 이대로 둘 것인가. 볏가리를 보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점점 높아지는 짚가리를 보며 고단함속에서도 희망을 품었던 농촌의 삶을 회복해야 되지 않겠는가.

농촌은 우리의 고향이다. 어머니다. 돌아봐야 하고 돌아가야 할 곳이다. 정부는 잡초로 무성한 다랭이 논에 풀을 뽑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서둘러 산업화를 앞당기는 것이 기본인 것처럼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인간이 흙 위에 서 있듯, 살아 있는 모든 만물이 흙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바른 이치이다. 따라서 농업은 우리 삶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산업화의 달콤함에 현혹되어 농업에 희망이 없다 말하지 말고, 도시의 젊은 아들이 어머니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아니 더 늦기 전, 무너진 질서 위에 바벨탑을 세우겠다는 허황된 꿈을 포기하도록, 정부는 지금 당장 농촌을 뒤돌아봐야 할 때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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