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애 군산 소방서 금동119안전센터장> 물불 안가리고 산다는것
<정은애 군산 소방서 금동119안전센터장> 물불 안가리고 산다는것
  • 정준모
  • 승인 2009.10.08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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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1

따르릉~

새벽 한시 소방상황실에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다.

“여보세요, 소방서죠? 우리 딸이 가출했어요, 어떡하면 좋아요 흑흑...”

“저, 아주머니 몇시쯤 나갔는지 누구랑 나갔는지 아십니까?”

“모르겠어요, 요즘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더니 그만 밤이 늦도록 안들어오네요. 우리 딸좀 찾아주세요!!”

“저희가 가출한 따님을 찾아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 죽겠다든가 하는 말을 하지는 않았나요?”

“아니, 소방서에서 위치추적해서 사람 찾아준다면서요!!”

“그건 아닌데.....”

#에피소드 2

야간에 구급출동을 하면 환자가 만취상태인 경우가 많다. 어떻게 생각하면 대부분 위급한 환자가 아니라 천만다행이기도 하지만, 구급대원들로서는 이런 취객 환자를 이송할 때 가장 많이 힘이 든다. 만취 환자들은 속과 겉이 다 아프다. 겉에 보이는 상처는 치료가 가능하지만, 보이지 않는 속이 아프면-내과질환, 때론 마음이기도 하다- 구급대원들로서는 달래고 어르고 나중에는 사정까지 하며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게다가 여성 만취객이 욕설하며 휘두르는 주먹과 발길질에 남자대원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지경에 이르면 위급환자 몇 명 이송하는 것 보다 더한 에너지가 소진되니, 우리끼리는 우스개소리로 만취환자를 가장 중증도(재난현장에서 적용하는 환자 분류체계)가 심한 환자로 분류한다.

# 에피소드 3

오늘은 행코 봉사활동 하는 날.

행코란 「행복을 나누는 코끼리」의 준말인데 소방공무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비번날 봉사활동을 하는 동아리 이름이다.

이상한 것이 시켜서 하는 일이라고 하면 밥을 사준대도 하기 싫은데,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니 도시락까지 싸갖고 땀흘리며 일하러 온다. 이번엔 노인 두분이 사는 집을 도배하고 청소해드리기로 한 날, 오늘따라 작업량이 많다. 방 세 개 도배와 소소한 고장수리까지, 해지기전에 할 수 있을까, 벌초 때문에 다들 바쁠텐데... 걱정하고 있는 참에, 회원들이 가족들까지 다 데리고 오는 통에 다른 날보다 인원이 오히려 더 많아졌다.

노인 두분중 한분은 102세된 할머니이고 한분은 아들인데 72세인 장애인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도배를 돕던 아이들이 할머니 연세를 알고 나서 사시는 동안 마지막 집단장일지도 모른다고 하니 어린 나이에도 의미가 남다른지 숙연해 한다.

요즘은 소방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있고 있어서 예전의 충직한 공복개념만으로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이야기가 되었다. 시민에 대한 각종 민원처리는 말할 것도 없고 노인들의 말벗과 매우 특이한 부탁까지 해결해야 한다. 또한 현장에서 끝나지 않고 재난피해 심리지원상담까지 전문가 수준으로 해내고 있다.

그 덕에 어디가서 소방공무원이라고 하면 고생한다며 분에 넘치는 위로와 격려를 받고 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며 생떼를 쓰는 사람도 있으나 이 또한 소방이 그만큼 시민의 곁에 늘 가까이 있기에 받는 애정이라 생각하니 마음 고생은 잠깐이고 오히려 감사하다. 뜨거운 열정으로 쌓아왔던 그간의 소방활동을 돌아보게 된다. 올해 역시 크고 작은 화재 및 사고등이 발생해 전라북도내에서만 화재 1,300여건에 사상자 인명피해 80여명이 발생하였다. 재산피해 또한 80여억원으로 좀처럼 인명이나 재산피해가 줄지 않는 실정이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방재의 최일선에서 더욱 전의를 불태운다.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화재나 각종 재난사고에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해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사람들 - 물불 안가리고 사는 그사람 「소방공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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