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보자기
가을과 보자기
  • 이한교
  • 승인 2009.09.30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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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으로 써늘함이 느껴지는 가을이다. 짓무른 여름 상처가 갈바람으로 꼬독꼬독 마르는 것 같아 좋다. 잠시 쉬어가는 고갯마루 휴게소에서 파란 하늘과 그 위에 떠있는 솜털 구름을 본다. 별들이 쏟아지는 가을 밤, 풀벌레 노래를 따라 부르며 반딧불이를 쫓아간다.

가을은 등산길로 말하면 산죽과 억새가 널브러져 있는 경사 없는 평 길이다. 생선으로 말하면 가운데 도막이다. 아무튼, 이 가을에 익어가는 들녘 황금 물결을 바라보는 부자의 마음으로 인사청문회가 진행되길 희망했지만, 속고 속이고, 무시하고 묵인하고, 상처를 뜯고 할퀴는 수준 낮은 청문회를 본 국민은 서글프다.

그래도 가을은 풍요로워 좋다. 부는 바람이 향기롭고, 뽀송뽀송한 어린아이 궁둥이처럼 만져보고 싶은, 그래서 보자기에 쌓아 벽장 속에 감춰두고 싶다. 이 가을에 꽁꽁 묶어놓은 얘기 보따리를 풀어 이별한 친구와 진솔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 다시 한 번 옛날로 돌아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먼지 나는 신작로(비포장 도로)를 걷고 싶다. 보자기에 책을 둘둘 말아 어깨에 메고, 찰싹거리는 양철 필통소리에 발맞춰 멍멍이와 시골길을 달려보고 싶다.

어머니가 헌옷을 잘라 손바느질로 한땀 한땀 꿰매주신 누더기 보자기, 책을 싸면 책보자기, 떡을 싸면 떡보자기, 선물 싸면 선물보자기, 접으면 하찮은 천 조각에 불과했지만, 펼치면 보기 싫은 것을 덮어주는 보자기였다. 여러 개를 이어 놓으면 생명을 구하는 구명줄이 되었지만, 손발을 묶어버리면 의지력을 빼앗는 도구가 되고, 얼굴을 가리면 강도를 위한 복면이 되는 보자기가 이 가을에 문득 생각난다.

우리 마음속에도 수많은 무형의 보자기가 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상대의 마음 보따리를 풀어 진실을 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빗장을 걸어 놓고 동문서답을 하면 어쩔 수 없다. 뻔한 일조차 모른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시치미를 떼도 힘으로 풀 수 없는 보자기, 따라서 이미 결정을 내려놓고 형식적인 과정을 밟으려는 여당과, 어떻게 하든 흠집을 내려는 야당의 싸움(인사청문회)은 애당초 의미 없는 평행선이었다. 이미 성숙한 정치를 외면하는 이들(일꾼)에게 기대할 것이 없었다. 차라리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에게 결론을 내리게 하는 것이 옳았다. 노련한 주인은 왜 이들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이유를 알고 있다. 현재 여대야소의 표 대결은 무의미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대로는 정치적인 불신만 키우는 꼴이라는 것을, 아예 청문회 자체를 없애든지, 유지한다면 국민에게 물어(여론조사) 결론을 내린다면 누구도 시비를 걸지 못할 것이다.

진정한 일꾼을 자청했다면 먼저 양심의 보자기를 풀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용기이다. 주인은 거짓보자기로 진실을 왜곡하는 일꾼을 원하지 않는다. 아들은 책임감이 강하고, 생활력 있는 아버지를 원하며, 병사는 병사 마음으로 군대를 통솔하려는 장군을 원치 않는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어가는 가을에 마음의 보따리를 풀어보자. 혼자만의 비밀은 아름다울 수 있지만, 공직자로서 양심을 버리면서까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보따리를 풀지 않는다면 국민을 우롱한 결과가 되는 법이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며, 속이면 패가망신을 당하는 법이다. 우선 당장 거짓과 진실을 적당히 넘나들며 유익을 취하는 자가 출세를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속일수록 더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당신을 위해서도 지금 보따리를 풀어야 할 것이다. 눈뜨고 지켜보는 국민 앞에서, 당신의 손바닥만 한 보자기로 진실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만이며 착각이라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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