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으로 다시 찾은 소중한 가치
리모델링으로 다시 찾은 소중한 가치
  • 김명한
  • 승인 2009.09.01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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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바쁘게, 시간에 쫒기며 자로 잰 듯한 생활을 하다보니 뒤는 물론 옆도 볼 겨를 없이 사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라고 한다. 오로지 자기 자신과 가족들 만 보며 산다.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내가 누군지 알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개인주의의 소산이다. 당연히 이웃과 담이 쌓아지고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어색해하며, 처음 보는 손님처럼 스치며 산다.

특히 “내가 사는 집이 전세니까 그리고 언젠가 이곳을 떠나게 되는데 구태여 정을 주고 받을 필요가 없지"라는 나그네 마음이 자리 잡고 있어 의식적으로 이웃과 멀리하며 살았다.

2년 전 전세 살던 집을 구입했다. 내 집에 살면서도 여전히 언젠가는 이사 할 생각으로 지냈다. 그러던 중 집 인근에서 아파트를 분양하고 있었다. 모델하우스를 보니 어느 정도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기대치를 충족하고 있었다. 결혼하여 29년을 살면서 한번도 새집에 살아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는 하나의 기회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행히 좋은 평형과 층호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준비한 돈으로 계약금을 치렀다. 살던 집을 부동산에 매매물건으로 내 놓았으나 두 달이 지나도 집을 보러오는 사람이 없었다. 집을 내놓고 3개월이 지나 아파트 1차 중도금을 냈다. 두 번째 중도금을 내야하는 시기에 분양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회사사정으로 계획대로 아파트 건축이 불가능하다며 납부한 대금은 원하면 반환을 해 준다는 것이었다.

집을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고, 살려고 하는 아파트는 살수도 없고, 모아둔 돈이 목돈 되어 수중에 있고, 언제 그 아파트가 준공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답답한 시간이 흘렀다. 순간 이 집에서 보낸 9년의 세월을 돌이켜 보았다. 겨울에 춥다는 것 외에는 나쁜 게 없었다. 이집에서 아들은 학교와 군복무 잘 마치고, 취직도 하고, 누구하나 아프지 않고 하고픈 일들이 거의 다 이루어지는 등 큰 사건 사고가 없었다. 새 집에 이사 가더라도 이보다 더 나아질 확신은 없었다. 아파트 분양 취소도 어쩌면 이집에 살아라 하는 계시인 것 같았다. 유난히 추운 것은 보일러의 교체와 바닥의 보온장치가 이루어지면 해결 될 것이고 새집에 살고 싶은 욕구는 이집을 리모델링하여 새집과 같이 꾸미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어쩌면 새집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이집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쳐 살기로 결론을 내렸다. 갑자기 집이 좋아 보였고 오래된 빚을 갚은 것처럼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현상을 체험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부동산에서 사람을 모시고 왔다. 그 분은 같은 동의 다른 집을 보고 구조가 맘에 들어 계약 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사정을 이야기 하고 정중히 양해를 구하였다. 갑자기 집이 웃는 것 같았고 이 집에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인 것처럼 굳어져 버렸다.

드디어 리모델링하는 업자가 선정되고 공사가 시작되었다. 9년전 이사할 때 이웃사람들이 오가며 누가 이사 오나 둘러 볼 때마다 나에게 관심을 주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러웠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곳에 사시는 분들이 모두 친척 같았고 왠지 정감이 있어 보였다. 출입문을 밀치고 살짝 고개를 내미는 이웃에게 손을 붙들고 안으로 들어와 보시라고 했다. 몇 층에 사시냐고, 여기는 이렇게 고칠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등 아주 오랫동안 사귄 지인과 같이 얘길 나누었다. 그렇게 15일이 지났다. 같은 라인에 사는 이웃들이 모두 한번씩은 우리 집에 발을 들여 놨다. 일부 집수리를 했거나 아니면 리모델링을 하려고 하는 분들이었다.

“이곳은 생을 다하는 날까지 내가 살 집이고 이들은 나의 이웃들이다. 내가 힘들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고, 그들이 어려울 때 내가 도와주어야만 할 나의 이웃이다”라고 생각하니 예전의 부담스러운 관심이 뜨거운 감동으로 내 가슴속에 뭉클하게 들어온다.

차를 정지하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이웃에게 다가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짐을 같이 옮겼다. 고맙게 생각하고 감사의 인사를 한다. 나의 작은 관심과 정성이 그들에게 큰 감동이 된 것이다. 갑자기 사람 사는 맛이 난다고나 할까. 어느 날 밭에 다녀와 수확한 복숭아를 차 트렁크에서 꺼내는 데 몇 개가 흘러 내렸다. 바로 옆에서 걸어가는 이웃이 주워 주었다. 순간 나는 너무 고마워 복숭아를 조금 싸 드렸다. 그 이웃도 고마워하고 나도 기뻤다. 나를 기쁘게 해주신 그 이웃에 감사를 드린다. 이런 게 세상사는 맛이구나! 왜 그동안 몰랐을까? 새삼 리모델링하고 다시 찾은 이웃과의 소중한 삶을 지금 느끼고 있다. 나에게 소중한 삶의 가치를 깨우쳐준 이웃에 감사드리고, 나도 좋은 이웃이 될 것임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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