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키드의 행동하는 양심
DJ 키드의 행동하는 양심
  • 김흥주
  • 승인 2009.08.20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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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환란의 좌절에 빠진 대한민국을 희망으로 이끈 박세리의 맨발 샷은 그 자체가 기적이었다. 이를 보고 자란 박세리의 아이들이 지금은 세계 골프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들을 우리는 ‘박세리 키드’라 부르고 있다.

지난 2002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등장을 보면서 한 사회학자는 ‘세대 전복(顚覆)의 미학’으로 표현했다. 소위 2030세대로 상징되는 젊은 아이들이 5060세대를 밀어내고 정권을 교체하면서 한국 사회 권력이동의 중심축으로 등장했다는 의미에서였다.

그러나 그 이전 1997년 국민의 정부를 어찌 보면 젊은 세대의 전략적 열광으로부터 태어난 최초의 세대 전복으로 볼 수도 있다. 지역구도 뿐만 아니라 세대대결에서 우위를 점한 것이 수평적 정권교체의 기반이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세대전(generation war)을 이끌었던 젊은 아이들이 바로 ‘DJ 키드’라 할 수 있다.

이들은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에 태어나 중ㆍ고등학교 시절을 70년대 격동의 유신정권과 함께, 대학 시절을 80년 광주항쟁과 5공 독재정권과 함께, 사회생활을 87년 민주항쟁과 함께 보낸 세대다. 이들의 성장 시기는 DJ의 좌절과 시련의 시기와 맞물린다. 그렇지만 이들이 진정으로 가슴으로 품은 것은 납치, 투옥, 연금, 사형선고에 대한 연민이라기보다 탄압을 뚫고 핀 ‘인동초’로 상징되는 DJ의 생명력이었다.

이들은 DJ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는 신념을 믿었다. 그래서 이들은 2002년 세대전복을 이끌었던 386세대처럼 이념으로 무장하고, 조직적으로 정치세력화 하지는 않았지만 민주화만은 이뤄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잃지는 않았다. 이들은 최소한의 행동으로 80년 민주화의 봄을 이끌었으며, 서슬 퍼런 전두환 5공 정권에 저항하였다. 87년 민주항쟁 시절에 넥타이 부대로 거리투쟁을 이끌었다. DJ로부터 내려 받은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세대적 사명을 실천하려 최선을 다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현실은 언제나 잿빛이었다. 비록 비판적 지지지만 선거 혁명의 희망으로 떠받든 DJ의 연이은 대선 실패로 인해 이들은 좌절하였다. 과학적 이념과 새로운 문화로 무장한 386세대들은 이들의 선택과 행동을 제도권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 신뢰일 뿐이라고 비판하였다. 정치에서, 운동에서, 삶의 현장에서 철저하게 샌드위치 세대가 되어버렸다.

이들의 마지막 희망은 97년 대선이었다. 선거를 통한 수평적 정권 교체가 시대적 사명임을 알고 있었던 DJ 키드들은 다시 뭉치기 시작하였다. 사비를 들여 수십 통씩 전화를 하기도 하고, 동료와 이웃과 치열한 술자리 토론을 벌여 비판적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일부는 PC 통신을 활용한 디지털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도 하였지만, 2002년과는 달리 대부분 아날로그 방식으로, 개별적 접근으로 진지전을 수행한 것이다.

결과는 97년 대선 승리였다. 많은 학자들은 이 결과를 두고 지역변수로 설명하지만 DJ키드들의 행동을 감안하면 세대변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 세대들이 지역을 넘어, 이념을 넘어 느슨한 형태나마 결집할 수 있었던 것이 정권교체를 이룬 것이다.

정권교체 이후 이들은 정치세력화보다 일상으로 돌아갔다. 낮은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그들이 선택한 정권의 성공을 기원하였다. 이렇게 DJ 키드들은 역사의 중심에서 일상의 중심으로 되돌아갔고,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들이 이 사회의 50대들이다.

2009년 8월 18일. DJ가 역사의 큰 자취를 남기고 기어이 우리 곁을 떠났다.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 DJ 키드의 한 사람인 나에게 떠오른 고인의 마지막 모습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울음을 터뜨리던 모습이다. 여든 다섯 살의 우리들 영웅이 오열하는 모습에서 그의 분노를 보았다.

지난 6ㆍ15 남북정상회담 9주년 기념식에서 고인은 “우리가 균등하게 평화롭게 정의롭게 사는 나라를 만들려면 행동하는 양심이 돼야 한다. 행동하지 않고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이다. 독재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아부하고, 이런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우리에게 행동하는 양심을 요구하였다.

그는 이제 떠났다. 그가 못다 이룬 꿈과 희망을 실현하는 일은 남은 이들에게 넘겨졌다. 이제야 말로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DJ 키드들이 다시 뭉쳐야 할 때가 왔다. 그래서 다시 한번 ‘행동하는 양심’으로 민주주의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그의 분노가 풀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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