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규 수필가> 지역신문 죽이는 신문고시 폐지
<신영규 수필가> 지역신문 죽이는 신문고시 폐지
  • 하대성
  • 승인 2009.08.05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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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이것 좀 받아가세요. 6개월 서비스 드리고 그 후부터 1년만 봐주시면 돼요.’ ‘현금 3만원 드릴 테니 신문 한부 보세요.’

‘선생님? 신문 보시는 거 있으세요? 이참에 ○○일보로 한번 바꿔보세요. 연말까지 무료로 넣어드릴게요. 스포츠신문이나 지방지도 한부 그냥 넣어 드릴게요.’

신문구독을 권하는 ‘판촉요원’들이 현금이나 상품권이 든 봉투를 내밀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소리다.

간혹 아파트 주변에서 이러한 말을 들어본 독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일부는 ‘아 괜찮아요. 저희 다른 신문 보고 있어요.’ 하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금을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하여 ‘그럼 한부 넣어주세요.’하고 쉽게 구독을 신청하는 독자도 있다. 필자도 신문판촉을 해본 경험이 있기에 구독을 유인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한때는 1년 구독 계약을 하면 6개월 무료구독+전화기, 선풍기, 자전거, 백화점상품권 등 독자가 원하는 판촉물을 줬다. 하지만 이제는 지역에 따라 서울에는 6~8개월 무료구독+5~8만 원의 현금을 주고, 전주는 6개월 무료구독+3~5만원의 현금을 준다. 돈 많은 신문사들이 이젠 독자를 돈으로 사는 셈이다.

일부는 자신이 원하는 신문을 신청하기보단 스포츠신문이나 경제신문을 끼워 넣어 주고, 무가지(無價紙)많이 주는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도 있다. 돈 많이 주고, 고액의 상품권을 주는 신문을 신청하면서 신문사간 불법판촉 경쟁을 부추긴다. 이는 독자 스스로 신문을 선택할 권리마저 포기하는 일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행정규칙 일몰제에 따라 다음 달 말 신문고시를 폐지한다는 소식이다. 한때 백용호(현 국세청장) 전 공정위원장이 “신문고시를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고 하자 시민·언론단체들이 발끈한바 있다. 이에 한나라당에서 ‘신문고시 존치’쪽으로 선회했었다. 그런데 또다시 신문고시를 폐지한다는 말이 나돌고 있으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신문구독 표준약관은 무가지와 경품을 합한 금액이 연간 구독료의 2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과징금을 부과토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신문고시가 없어지면 신문시장은 난장판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기에 공정위가 신문시장의 불공정 행위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시행 후 5년 동안 개정하지 않은 규칙을 폐지하는 행정규칙 일몰제에 따라 신문고시를 폐지한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한나라당이 신문사의 무가지·경품제공 금지 등을 규정한 신문법 10조 2항을 삭제하려다 그대로 둔 것도 이 조항이 없어지면 신문시장의 혼탁상을 더 부추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문시장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하고 처벌해야 할 공정위가 앞장서서 신문고시 폐지를 검토 중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정부 부처마다 시행 후 5년 동안 개정하지 않은 규칙들을 8월 23일 일괄 폐지키로 했는데, 거기에 신문고시가 포함돼 있다.”는 게 이유의 전부다. 신문시장의 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공정 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 반드시 작동해야 한다고 본다.

가뜩이나 미디어법이 여야 대치 속에 날치기 통과됐다. 이로써 족벌신문과 대기업의 방송 진출이 가능해졌고, 일간신문과 뉴스통신사가 상호 공동 경영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일간신문 지배주주가 여러 신문사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중앙지가 방송뿐만 아니라 지방언론도 지배할 수 있게 됐음을 뜻한다. 기존의 지방신문 흡수·합병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방신문의 출현까지 가능해진 것이다.

지역신문은 지역여론을 형성하고 지역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한편 지역문화 창달과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공적 존재이다. 지역신문을 위한 지원, 육성에 힘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그나마 있는 신문고시를 폐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과연 누구를 위해 신문고시를 폐지하려는 것인지 공정위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이 정부에 지역신문, 그리고 지방을 위한 마인드를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공정위는 지역신문을 다 죽이는 신문고시 폐지 방침을 당장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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