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형’ 복지모델이 필요하다
‘농촌형’ 복지모델이 필요하다
  • 김흥주
  • 승인 2009.07.1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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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유렵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사실상 타결되면서 국내 농축산 농가의 심각한 타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 진단에 따르면 이번 협상 타결로 인해 국내 농산물 피해규모가 연간 3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미국과의 FTA 협상안 비준이 뒤따른다면 국내 농가가 설 곳이 없어 보인다.

정부는 그 동안 이러한 농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소위 맞춤형 농정이라 하여 생산기반이 있는 전업농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나머지 영세소농, 고령 가족농 등은 복지를 통해 생존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 2004년 “농림어업인삶의질향상및농산어촌지역개발촉진에관한특별법”을 제정하여 농촌복지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2005년 4월에는 이 법에 근거하여 2009년까지 “삶의 질 향상 및 지역개발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추진 중에 있다. 정부가 농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년 동안 투입하는 예산은 20조 2,731억 원에 달한다. 이중에서 복지예산은 3조 4,226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20.5%를 점유하고 있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특히 복지관련 각종 시설이 크게 확충되고 있다. 보육지원 등을 위해 설치하는 여성농업인센터가 2004년 27개소에서 2009까지 시ㆍ군당 1개소씩 163개로 늘어난다. 특히 초고령화 농촌 노인들에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재가노인복지센터가 올해까지 전국 98곳에 설치되며, 건강장수마을도 2005년 100개소에서 2009년까지 800개소로 확대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 같은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실상을 보면 정책추진 자체가 부실하기 그지 없다. 농촌 현실을 무시한 획일적인 정책들 때문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의 기본 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가장 취약한 계층인 농어민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면 무엇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일이다. 정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대도시의 절대 빈곤인구 비율은 6.6%이지만 농촌지역은 14.8%에 이른다. 대도시는 빈곤가구의 93.5%가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고 있는 반면 농촌지역은 48.6%에 불과하다. 농업 종사자는 전체 가구의 ‘1%’ 만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로 분류되고 있다. 빈곤계층 비율이 가장 높은 농민이 정작 정부의 복지제도에서는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서비스 제공도 문제가 많다. 특히 사회복지시설과 서비스의 도농격차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2008년 농촌지표 자료를 보면 도시민이 주로 활용하는 생활시설은 농촌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에 지역 단위에 다양한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이용시설은 대부분 도시에 몰려 있다. 노인 이용시설의 경우 가정봉사원파견시설의 80.9%, 주간보호시설의 95.7%, 단기보호시설의 80.6%가 도시에 몰려 있다. 사회복지관은 95.6%가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한마디로 농촌은 도시의 시설보호 공간만 제공할 뿐, 사회복지서비스에서 완전히 배제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보건의료서비스 수준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2008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농촌의 유병률은 21.8%로 도시의 16.6%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는 훨씬 떨어진다. 의료기관이나 인력이 대부분 도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집계결과 2008년 농어촌지역 종합병원과 병ㆍ의원 수는 3,257개로 점유율이 11.7%에 불과하다. 의사 7.3%, 간호사 6.2%에 그치는 등 의료인력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접근성도 떨어진다. 와병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도시는 평균 17.5분이지만 농촌지역은 29.9분에 이른다. 이 때문에 보건의료서비스 만족도는 38.33점에 머무르고 있다.

농촌지역의 열악한 사회보장 수준은 농민의 삶의 질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이 2008년 9월 농촌지역 삶의 질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복지수준 만족도는 15.2%에 그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삶의 질 향상을 위해 2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고도 그 결과는 참혹하게 나타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농촌 ‘지역’과 ‘농민’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정책보다는 도시형으로 개발된 사회복지모델을 이식시키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통해 새로운 ‘농촌형’ 사회복지 모델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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