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정치의 함정
이미지 정치의 함정
  • 김남규
  • 승인 2009.07.1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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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두고 ‘합리적 보수주의자’라는 말들이 오고 갔다. 그리고 그에게 ‘실용주의자’라는 대명사가 붙어 다녔다. 합리적 보수이면서 실용주의자, 거기에 CEO 출신의 대통령이라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기 충분 했다. 그런데 그 기대와는 반대로 지금 국민들은 자신이 선택한 대통령을 원망하며 땅을 치고 있다.

원래 실용주의란 좌·우 이념 논쟁보다는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고 득이 되는 것은 취하는 것이 맞다. 이명박 정부에게 실용주의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집권 초기 고소영, 강부자 내각 인사들의 도덕 불감증을 시작으로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거꾸로 돌리기, 특히 지역 균형발전 정책의 포기와 남북관계를 대결 구도로 몰아간 것은 그동안 국민적 합의와 정책의 성과를 철저히 부정하고 무시한 것으로 실용주의와는 철저히 거리가 먼 것이다. 사회복지 예산의 축소와 부자와 대기업을 위한 감세 정책, 집시법, 국정원법, 방송관련법의 개정 역시 실용주의와 상관없는 ‘이명박식 실용주의’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합리적 보수’ ‘실용주의자’라는 착시를 일으키게 했던 이미지 정치를 다시 구사하려고 나온 것이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강화’ ‘친(親)서민 행보’이다.

재래시장을 방문해서 어묵하나 팔아주고 서민적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것이 ‘친서민 행보’라는 것이다. ‘대형마트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 ‘대형마트 규제가 필요하다’는 상인들의 이야기를 얼버무리며 받아치는 이명박 대통령의 답변이 정말 압권이다. ‘인터넷으로 직거래를 하면 되지’ 라고. 비정규직법안 개정을 이유로 비정규직 전환 지원금 1,185억을 쌓아 놓고도 집행하지 않는 정부가 바로 친서민적인 정부이다. 예산의 조기 집행 때문에 1년 동안 쓸 복사 용지를 잔뜩 구입해 놓는 자치단체에게는 실적 보고를 하라고 채찍을 날리면서 정작 직장에서 쫓겨 날수 밖에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예산을 집행하지 못하겠다는 게 친서민 정책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의 실체는 ‘4대강 살리기’ 사업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4대강 죽이기 사업’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4대강 사업에 22조를 투여하고 기업을 살리면 서민들은 기업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게 바로 친서민 정책이다. 이미 부자 감세 결과 기대와는 달리 기업은 더 이상의 투자를 확대하지 않고 있고, 기업에게 더 이상의 고용 창출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밝혀졌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4대강 사업 예산에 눈이 멀어 경쟁하듯이 뛰어 들고 있다. 간접 예산을 포함하여 3년간 4대강 사업에 투여될 예산이 30조에 육박할 것으로 보이는 이 돈은 누구의 돈인지 생각할 필요가 없는 듯하다. 결국 나중에 국민들이 다시 갚아야 할 빚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당장 눈앞에 이익에 몰두하는 자치단체의 모습은 마치 지난 총선에서 ‘뉴타운 건설’ 공약에 표를 몰아 준 서울 지역의 투표 행태와 닮아 있다.

우리는 대통령 한사람 잘못 뽑고, 시장·군수 잘못 뽑았다고 한탄하고, 지방의원 하나 잘못 뽑아서 이지경이라고 핑계를 대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더욱 답답하고 절망스러운 것은 대통령 한사람, 정치인 하나 잘못 뽑았다고 세상이 이처럼 거꾸로 간다면 어딘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87년 민주화 체계에 안주하여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살고 있지 안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정말 철저히 기억하고 돌아보아야 한다. 은행 빚을 얻어서라도 너도 나도 주식 투자와 부동산 투기로 한몫 잡자고 휩쓸려 다니고,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아무런 생각 없이 인사말로 건네고, ‘경제 대통령’에 모두 이성을 잃고 묻지마식 투표를 했던 우리들의 자화상을 돌아보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치루고 있는 고통은 고용 없는 성장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망각한 결과라는 사실을 각인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지금 주식 사면 1년 안에 부자 된다’는 투기를 권하는 대통령과 살고 있다. 그리고 ‘사람살기 좋은 지역’이 아니라 ‘기업하기 좋은 지역’을 만들겠다는 자치단체장에 아직도 기대감을 갖고 살고 있다. 개발과 부자 되기 열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단지 대통령 잘못 뽑은 탓만 하고 우리의 자화상을 보지 못한다면, 그들의 이미지 정치에 또 속을 수밖에 없고 우리의 고통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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