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연엽주 (蓮葉酒), 연 향기 머금은 선비의 술
44. ­연엽주 (蓮葉酒), 연 향기 머금은 선비의 술
  • 김효정
  • 승인 2009.07.01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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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가오면 필자가 자주 빚어 즐기는 술이 있다. 그 술은 연잎을 넣어 담는 연엽주로 평소에도 즐겨 빚기도 하지만, 여름을 가장 대표할만한 술이 아닐까 싶다. 연잎의 향기를 담은 술인 연엽주의 기억은 예전 전통술박물관 기획행사였던 술 기행 중 외암 민속마을에 숨겨진 비주 연엽주를 찾을 때 일이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에 위치한 외암 마을은 고풍스럽다는 말이 그 어느 곳보다 잘 어울린다. 마을 뒷산인 설화산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고택과 초가들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했다. 조선 고종 때부터 빚어졌다고 알려진 이 술은 선비의 향기로 불리며 지금도 외암 마을에서 세월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봄마다 임금께 진상한 무형문화재 제 11호인 아산연엽주는 충남 외암 마을에 살고 있는 예안 이씨 가문에서 대대로 빚어온 가양주다. 전해 내려오는 바에 따르면 연엽주는 이씨의 고조부인 이원집(1829~1879)이 처음 빚었다고 한다. 이원집은 고종 때 왕실 비서 감승을 지낸 사람으로 당시 궁중음식의 제조법을 기록한 ‘치농’이라는 요리책을 저술할 정도로 다방면에 능력을 보였다. 연잎을 재료로 사용하는 연엽주에는 180여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베어 있다. 그 배경은 여기에 있다. 구한말 당시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자 전국 각지에서 굶주림을 호소하는 백성들의 상소가 잇따르자 고종은 사대부 집안에서도 잡곡밥을 섞어 먹고 5첩 반상을 들이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고종 본인의 기력을 잃어가자 이를 걱정한 신하들은 몸에 좋은 술을 만들어 임금께 진상하자는 의견을 모으게 됐고, 이때 채택된 청주가 바로 비서감승 이원집이 직접 빚은 연엽주이다. 피를 맑게 하고 혈관 넓혀주는 청주인 연엽주는 찹쌀로 빚은 누룩에 연근과 솔잎을 넣고 발효시켜 만든 술이다. 알코올 도수가 10~15%로 순하고 쌉쌀하면서도 감칠맛을 갖고 있는 술이 외암 민속마을 연엽주이다.

한편 연엽주는 문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되었는데, <주방문>,<산림경제>,<고려대 규곤요람>, <규합총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조선고유색사전>, 부인필지 등에는 연엽주, <임원십육지>에는 연엽양방(蓮葉釀方)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증보산림경제>, <고사 십이집>, <군학회등>, <양주방>에도 기록되어 있다. 재료 수는 2,3,4,5가지였는데, 이들 재료는 멥쌀, 물, 누룩, 찹쌀, 연잎 등이었다. 문헌에 등장하는 쌀 1말을 백세 하여 하룻밤 물에 담갔다가 물 2병을 끓여 식혀서 밥에 섞는다. 누룩을 가루 내어 7홉을 준비한다. 독에 연잎을 펴고 그 위에 밥을 넣고 위에 누룩을 뿌리기를 켜켜로 떡 앉히듯 하며 단단히 봉하여 볕이 들지 않는 찬 곳에 두어 익힌다. 날이 더우면 쉬기 쉬우니, 가을에 서늘한 후 서리 내리지 않고 잎은 마르기 전에 빚으면 향미가 이상하고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연엽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룩을 잘 빚어야 하는데, 누룩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재료 중 옥수수는 발효제 역할을 하고, 감초는 간의 대사 작용을 증진시키며, 밀과 녹두는 초독을 없애고 독을 중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누룩에 쌀, 찹쌀, 연잎, 솔잎 등을 함께 재료로 사용한다. 주재료인 연잎은 채취시기를 잘 선택해야 하는데, 가을철 서리 내리기 전 그리고 잎이 마르기 전의 것을 골라야 나중에도 독특한 향기와 맛을 기대할 수 있다. 술 항아리에는 연잎이 4~5장 들어가는데 연잎을 구할 수 없는 겨울에는 연뿌리(연근)을 대신 넣는 것 또한 특별한 연엽주를 빚을 수 있다. 이렇듯 연엽주는 취기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은은히 올라오게 되는데, 그 맛이 연엽주의 참맛이 아닐까 싶다. 참된 마음으로 정성껏 빚어야 비로소 맛이 나는 전통술이라며 그 맥을 이어가는 장인 정신을 되새겨 보길 바란다. 또한 한 번 빚는 술 빚기인 단양주에 효과적이고 간편하게 빚을 수가 있으니, 순한 연엽주를 빚어 여름을 이겨내는 지혜를 발휘해 보자.

글: 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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