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여지도서로 들여다본 18세기 전주
국역여지도서로 들여다본 18세기 전주
  • 이지현
  • 승인 2009.06.30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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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전주의 풍속(風俗)

사람들이 눈치가 빠르고 영리하다. ‘주기(州記)’에 ‘기름진 땅과 메마른 땅이 섞여 있으며, 사람들이 눈치가 빠르고 영리하다’고 했다.

백성들은 어리석거나 완고하지 않다. 이규보(李奎報)의 기문(記文)에 ‘사람과 물산이 번성하고 화려하며 즐비하여, 역사가 오래된 나라의 기풍이 남아있다. 그러므로 그 백성들은 어리석거나 완고하지 않고 모두가 점잖은 선비와 같다’라고 했다.

집안을 다스리는 사람은 대부분 곡식을 저장하여 흉년에 대비한다. 진남루(鎭南樓)에 적힌 이경동(李瓊仝)의 기문에 나오는 글귀이다.

전주는 우리 역대 임금님의 고향이며 남부 지방의 인재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전주 향교에 적힌 서거정(徐居正)의 기문에 나오는 글귀이다.

물건을 싣는데 수레를 사용하며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상품을 사고판다.

③ 전주의 형승(形勝)

나라의 발상지이며 산천(山川)의 경치가 빼어나다. 모두 윤곤(尹坤)의 기문에 나오는 글귀이다.

우리 조선의 근본이 되는 땅으로 주(周)나라의 선대가 일어난 태빈 땅과 같은 지역이며 전라도의 으뜸 고을이다. 모두 공북정(拱北亭)에 적힌 서거정(徐居正)의 기문에 나오는 글귀이다.

안팎으로 산과 강이 휘감아 돈다. 성임(成任)의 시에 ‘안팎으로 산과 강이 전주의 영역을 휘감아 돈다(表裏山河歸版籍)’라고 했다.

<국역 여지도서-전라도 보유편>

이지현기자 jh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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