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한민족통일포럼 전라북도 지회장> 성공한 대통령이란...
<이종욱 한민족통일포럼 전라북도 지회장> 성공한 대통령이란...
  • 이수경
  • 승인 2009.06.2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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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통령 44명 가운데 링컨만큼 통근 인물이 없기 때문에 세계인에 존경을 받는다.

대통령 선거에서 겨룬 정적(政敵)인 월리암수어드와 샐먼체이스를 국무장관과 재무장관에 기용했다. 이들은 초기엔 링컨과 마찰을 빚었으나 나중에 링컨의 충실한 지지자가 돼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도 내각에서 각료들의 논쟁을 지켜보는 걸 즐겼다.

특히 해럴드 아이크스 내무장관과 헨리 윌더스 농무장관은 경제정책을 놓고 사사건건 대립했다. 루스벨트는 논쟁을 충분히 듣고 종합해 국정 방향을 정했다. 그 결과 뉴딜정책으로 불리는 각종경제 회생정책을 내놔 대공항의 위기를 극복했다.

존 F케네디는 취임초기 10년안에 달나라에 갈수 있다고 공약했다. 무모하게 던진 말이 아니었다. 그는 전문가와 국민들을 모두 이글고 그 꿈을 향해 갔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점은 무엇인가 링컨의 정적을 껴안는 신념의 정치로 남북전쟁승리와 노예해방을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귀재로 부하 충성에 집착하지 않는 대통령.

존 F케네디는 국민에게 꿈과 희망 끈을 놓지 않는 선도적인 리더십이 돋보인다.

200년전에 태어난 에이브러햄 링컨과 이명박 대통령을 비교할 수는 없다.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상황이 현재와는 너무나 차이가 크다. 그러나 한가지 문명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라의 사정이 너무나 나빴다는 것이다.

링컨은 5년간 대통령직에 재임했지만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들끊는 정적은 늘 그를 비난했고 남북전쟁은 불리했으며 사생활은 편치 못했다. 둘째아들이 12세를 넘기지 못하고 장티푸스로 사망하자 링컨부인 메리토드는 심한 우울병을 않으며 헛소리를 해대 그를 괴롭혔다.

링컨이 노예해방의 단안을 내린 1862년 9월 상황도 무척 안좋을때 였다.

국무장관 수어드는 반대했다. 이유는 두가지였다. 첫째는 남군(南軍)과 벌인 7일 전쟁에서 패한뒤 마지막 발악을 할 것이며 둘째는 영국이 기회가 왔다며 전쟁에 개입하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웰스는 아예 말문을 닫았다.

그러나 노예해방은 링컨의 신념문제였다. 1등 국민과 3등 국민을 나눠 놓은 상태에선 미국 통합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훗날 말했다.

“결과가 좋으면 어떤 비난도 문제 되지 않아

그러나 결과가 나쁘면 천사 10명이 변호해줘도 소용이 없겠지“

바로 이것이다.

미 증유의 국난에 봉착해 상황논리에 휘둘리면 안된다. 올바른 신념으로 국정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큰 방향을 정하면 지체없이 밀고 나가는 신념.

그것이 위대한 리더의 요체임을 링컨은 실천했던 것이다.

링컨은 정신없이 전개되는 남북전쟁 와중에 1861년 미국 동서 횡단철도를 착공하는 일도 해 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500여만표를 국민은 더 몰아 주었다. 국회도 과반수가 넘는 172석이다.

국민이 무엇을 고대하고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가라는 명제와 답은 나왔다. 앞으로 3년간 이명박 대통령은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에서 위대한 리더십을 이 민초(民草)들은 보고자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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