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아프다
국민이 아프다
  • 이한교
  • 승인 2009.06.1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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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음주 운전자에게 치어 이승을 떠난 어머니에게 오히려 독설을 퍼부어 대던 가해자의 부모를 생각하면 말이다. 살만큼 산 노인이니 자식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합의부터 보자던 그 당당한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시골의 2차 왕복도로를 건너다 봉고차에 받쳐 온몸이 부서져 버렸다. 연락을 받고 읍내 병원으로 허겁지겁 달려갔을 때, 부러진 다리를 고정한다고 석고를 반죽하고 있었다. 환자의 위급상황조차 판단하지 못한 의사를 원망할 여유도 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전주로 향했다. 급한 나머지 가까운 개인병원에 가보았지만 거절당하고, 대학병원에 가는 동안 어머니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들인 난 참나무 껍질 같은 깡마른 손을 부여잡고 정신을 차리셔야 된다고 발을 동동거렸지만, 아픔과 공포에 질린 창백한 얼굴에서 눈물만 흘리고 계셨다. 이미 온몸이 과속 차량과의 충돌에 파열되었거나 부러져 있었던 것이다 .

일흔아홉 나이에 새벽기도회를 하루도 빠지지 않으셨던 분이었다. 식사 한 번 거르신 적 없는 건강한 노인이셨다. 나들이 때면 모시 베를 직접 날고 짜신 옷을 즐겨 입으시고, 참빗으로 머리를 곱게 빗고 항상 동백기름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셨던 분이셨다. 힘든 농사일로 온몸이 굳어지신 시골 아낙이었으며, 자식을 위해 생강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전국을 누비셨던 장사꾼이셨다. 자식이 집을 나설 땐 늘 차 조심하라고 말씀하셨던 어머니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피골이 상접한 쭈글쭈글 한 손,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희미한 맥박, 따스한 온기로만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가 문득 생각난다. "아프다." 촛불이 꺼지듯 가까스로 토하듯 뱉어낸 그 말을 듣고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마음 한구석에 지금도 상처로 남아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16년이 지난 지금 일기를 쓰는 심정으로 이글을 적고 있는 것이다.

죽음은 긴 슬픔을 남겼다. 이유가 어디에 있던 오목가슴을 쥐어뜯는 고통이었다. 한마디 사과가 없는 가해자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솔직히 어머니의 죽음을 이용해 돈을 벌려 한다고 말할 때 총을 들고 싶었다. 늙은 사람이니 덜 서운할거라고 말할 때 칼을 품고 싶었다. 평상시에 잔병치레로 골골하셨다는 얘길 들었을 때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에겐 불행의 시작이었다. 고인은 가족의 기억 속에서 함께 살고 있다. 듣거나 보거나 말하지 못한다 해서 함부로 말거리를 만들면, 고인은 물론 그 유족에게 더 큰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남아 자유롭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우렁잇속 공방을 벌릴 자격이 우리에겐 없다는 것이다. 어떤 말로나 글로도 고인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쉽게 목숨을 버려서는 안 된다. 어찌 보면 자살이란 무책임한 면도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또한, 내 잘못으로 상대방을 죽게 만들었다면 큰 잘못이다. 아니 정치적으로 특정인의 죽음을 이용하는 사람은 더 큰 죄인이란 얘기를 하고 싶다.

묻고 싶다.

진정 당신도 그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아프다"라고 말하는 그 유가족(국민)에게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또 다른 사람이 아픔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버리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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