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시국선언
교수 시국선언
  • 김흥주
  • 승인 2009.06.0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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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들어 대학의 교수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지난 6월초 서울대와 중앙대의 교수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전국의 대학 교수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있다. 교수들만이 아니다. 대학 총학생회와 시민사회단체, 종교계까지 시국선언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87년 민주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시민 저항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시국선언은 말 그대로 현 시국의 위기에 대한 비판과 해법을 제시하는 이성의 목소리다. 교수들이 다양한 저항방식을 접어 두고 시국선언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행동하는 지성으로서 실천의 원칙과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시국선언은 단순한 ‘선언’ 이상의 가치와 파괴력을 지닌다. 교수라는 지식인 집단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상 때문만은 아니다. 현안에 대한 진지한 성찰, 합리적 대안, 솔선수범과 책임감이 그 안에 진솔하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관행과 침묵 속에 수시로 녹슬어 가는 민주의식에 대한 날선 각성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 등 지식인들의 시국선언은 우리 현대사의 고비 고비마다 큰 구실을 했다.

4. 19 혁명 당시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던 전국대학교수단 시국선언은 독재자 이승만과 자유당 권력을 붕괴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87년 6월 민주항쟁 때도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결국 거국적인 시민항쟁을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되었다. 2004년 고(故)노무현 전대통령 탄핵사태 때에도 교수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은 시민들의 자발적 촛불시위와 함께 민주 대통령을 지켜내는 방패막이 될 수 있었다.

2009년 6월. 이제 다시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선언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최근의 민주주의 파괴와 훼손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서명 교수들은 대부분 지난 수십 년 간 온갖 희생을 치르며 이뤄내고, 지켜온 민주주의적 가치와 원칙들이 현 정부 들어 크게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민주주의는 지켜지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지켜지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소통과 연대의 정치가 사라진 현실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해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집회 이후, 현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영역에서든 시민들과의 소통을 하려 하지 않는다. 경제이슈를 주도했던 인터넷 논객에 대한 구속 조치가, 전경차로 폐쇄된 서울광장이, 5살 아이 손에 들린 촛불에 대한 경찰의 과잉반응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시국선언 교수들은 이 점을 우려하면서, 진정한 소통만이 사회통합의 해법임을 제시하고 있다.

셋째,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개발독재의 성장 패러다임이 망령처럼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교수들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4대강 정비 사업을 대운하 사업의 시작라고 믿고 있으며, 이 때문에 우려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 녹색성장이라 포장하지만 기본적으로 토건국가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수들은 대운하 건설보다 시민들과 함께 미래의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교수들의 시국 인식과 해법은 지극히 정당하다. 문제는 이를 바라보는 일부 정치집단의 과민 반응이다. 민주 평통 사무처장은 전체 교수 수에 비해 일부분만이 참여했을 뿐이며, 그나마 이전의 좌파 정권에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했던 교수들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몇몇 보수집단은 시국선언장까지 난입해 색깔논쟁으로 덧칠하고 있다. 정부 반응은 더욱 차갑다. 역시 참여 교수의 ‘수’를 가지고 자위하는 것 같다. 나아가 교수의 현실 참여를 ‘정치교수’로 몰아붙이는 인상을 주고 있다.

하지만 선언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교수들의 문제 인식은 민주주의의 위기에 있다. 소통과 연대의 정치가 사라진 데에 있다. 사회적 합의 없는 무리한 정책추진에 있다. 이념대결이나 ‘쪽수’의 정치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수들의 해법은 대결보다는 상생을, 강제보다는 포용을, 현재보다는 미래를 주시하고 있다. 시국선언의 정당성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사 경험은 정권이 교수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정당한 주장을 무시했을 때, 이를 계기로 폭발적인 국민저항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갈등과 저항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기 전에 교수들의 합리적 해법에 귀 기울이는 현명함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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