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권위가 그립다
숭고한 권위가 그립다
  • 이한교
  • 승인 2009.05.1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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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성한 일은 반드시 쇠한다는 표현을 화무십일홍이라 한다. 세상의 권력이 무한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곧잘 빗대어 얘기하는 이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철없는 아이거나 조금 모자라는 경우일 것이다.

요즈음 각종 매스컴에서 지겹게 듣는 이름이 있다. 지난 정권에서 돈으로 막강한 권력을 얻어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죄인처럼 끌려 다니며 고개를 숙여야 하는 신세가 되어 안쓰럽다.

권불십년이라 했던가. 누군가 사냥이 끝나면 그 개는 삶아 먹는 게 이치라 했다. 결국, 우리는 먹고 먹히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며, 물이 위해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어느 사람도 거슬릴 수 없는 법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그들이 권력을 등에 업고 술덤벙 물덤벙 거리며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높이 오를수록 떨어졌을 때 충격이 크다는 사실을 망각한 불감증이 개인의 자아의식을 좀먹고 공동체 의식을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똥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옛 속담이 있다. 배설물에서 호박씨가 나왔는데도 아무것도 안 먹은 척 시치미를 떼는 모습들이 구차하다는 얘기다.

청백리 똥구멍이 송곳 부리 같다는 속담도 있다. 부정한 재물을 탐내지 않는 깨끗한 권력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달리 먹은 것이 없으니 배설할 것이 없어 항문도 송곳같이 날카로울 것이라는 의미이다.

조선 초기의 명재상이었던 황희정승은 18년간이나 영의정을 지냈지만, 인품이 원만하고 결백하여 청백리라 불렀다 한다. 그러나 그에게도 유독 술을 좋아하는 아들이 근심거리였다. 아들 술버릇이 더욱 심해지자, 어느 날 정승은 어깨에 밤이슬이 내려 축축해질 때까지 대문밖에 서서 아들을 기다렸다고 한다. 술 취한 아들이 비틀거리며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그러자 당황한 아들이 “아버지 접니다.” 정승은 더욱 정중하게 “아닙니다. 자식이 아비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내 자식이 아니라 손님입니다.”라 말했던 정승의 가르침에 따라, 그 아들은 아버지 못지않은 청백리 선비의 자세로 학문에 정진했다고 한다.

진정 이 시대의 황희 정승은 없는가. 역사책에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인가. 이 시대의 정승은, 자식의 일이라 하면 무슨 돈이든 끌어다 그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 도리로 안 결과, 아들과 가족까지 검찰청으로 끌려 다니는 신세를 보며, 황희 정승이 뭐라 할지 궁금하다.

아마 권력은 있었으나 권위를 잃어 버렸음에 대하여 탄식하였을 것이다. 새로운 권력 앞에 만신창이가 된 권위, 한없이 교만한 권력은 어리석게도 이겼다고 자축하는 습성을 가졌다. 그러나 우러러 숭엄하기까지 한 권위가 강력한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패가망신했을 때인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황희 정승의 숭고한 권위가 그립다. 지난 과거 역사에서 권력의 칼을 휘두른 인물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아직도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술 취한 아들을 대문 밖에서 밤늦도록 기다리다 젖은 황희 정승의 촉촉이 젖은 어깨이다.

5월이다. 계절의 여왕답게 녹색의 푸름이 하늘을 덮는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어 나뭇잎으로 떨어질 것이다. 4월의 벚꽃이 세상을 덮을 듯 요란했지만,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듯, 기억 속에서조차 지워질 당신들은 진정한 우리의 이웃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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