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 시련이 보약 농구명가 화려한 부활
KCC 시련이 보약 농구명가 화려한 부활
  • 신중식
  • 승인 2009.05.03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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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우승까지> 과감한 트레이드, 하승진 분전 등 마침내 결실
한국프로농구(KBL) 역대 최다인 통산 4회 플레이오프(PO) 우승의 금자탑을 쌓은 전주 KCC(전신 현대). 그러나 지난 2003-04시즌 우승 뒤 다시 정상에 오르기까지 5시즌 동안 그야말로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테마가 있는 뉴스변상욱의 기자수첩아주 '獨'한 인터뷰‘그바보’, ‘신데렐라맨’ 제치고 주말 재방송 1등철을 종이처럼 다루는 조각가, 강은구 전시회5월 잇따른 ○○날에 보는 맞춤 공연들불세출의 농구스타를 감독으로 영입했지만 프로 출범 후 첫 꼴찌의 불명예를 안았다. 또 KBL 최고 인기선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를 버린 데 대한 혹독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고 올시즌 거인들의 부조합으로 팀의 위기도 찾아왔다. 통산 4회 우승의 명가 재건을 이루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KCC의 발자취를 살펴보자.

▲'신산(神算)→농구대통령' 사령탑 교체의 과도기

신산 신선우 당시 KCC 감독은 지난 2004-05시즌 뒤 창원 LG 사령탑으로 전격 이동했다. 지난 1994년 실업 현대전자부터 KCC 전신인 현대까지 10년 이상 터줏대감이었던 신감독의 LG행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통산 3차례 PO 우승 등 KCC를 프로 명문으로 올린 명장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KCC는 지난 02-03시즌 뒤 TG삼보(현 동부)에서 은퇴한 허재를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신산의 카리스마를 이어받을 적임자로 농구대통령을 낙점했다. '스타 출신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을 깨고 허감독은 05-06시즌 5위로 PO에 진출하며 그럭저럭 성공적인 지도자 데뷔를 치렀다.

하지만 06-07시즌이 문제였다. 10년 전성시대를 열었던 이상민(37), 추승균(35), 조성원(38 · 은퇴) 등 이른바 '이성균' 트리오의 뒤를 이을 선수들이 없었다. 이상민, 추승균이 부상 등으로 주춤했고 외국인 선수들의 난조 속에 KCC는 정규리그 최하위로 처졌다. 9위 인천 전자랜드에 8경기나 뒤지면서 프로 출범 후 11시즌만의 첫 꼴찌로 농구명가의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상민의 이적-서장훈 영입의 거센 후폭풍

결국 KCC는 시즌 뒤 대대적인 팀 개편에 나섰다. 핵심은 국보급 센터 서장훈(207cm) 영입이었다. KCC는 가드 임재현까지 영입하며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 명예 회복에 대한 공격적인 의지를 쏟아냈다.

하지만 문제는 보호선수였다. KCC는 FA 영입에 따른 보호선수 명단에 팀내 간판 이상민을 뺐다. 사실상 이상민을 버린 셈이었고 팀 노쇄화를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서장훈을 내준 서울 삼성은 보상선수로 이상민을 지목했다.

10년 이상 프랜차이즈스타로 군림했던 이상민의 이적에 전주 홈은 물론 농구팬들의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이상민과 서장훈의 이적에 따라 삼성-KCC전은 07-08시즌 최고의 빅카드로 떠오르기도 했다.

더욱이 KCC는 정규리그 2위로 직행한 4강 PO에서 이상민의 삼성에 비수를 꽂혔다. 성공적인 세대 교체를 이루는가 싶었던 KCC는 삼성에 3패를 당하며 결승행이 좌절된 채 씁쓸하게 시즌을 마쳤다.

▲최장신 하승진 영입과 거인들의 충돌

08-09시즌 전 KCC는 또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KBL의 역사로 기록될 만한 거물 하승진(221cm)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영입하게 된 것. 기존 서장훈에 하승진까지 KCC의 독주는 시즌 전부터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하승진의 출현으로 출전시간이 줄어든 서장훈이 불만을 드러내면서 팀 분위기가 흐트러진 것. 또 거인들이 함께 뛰다 보니 스피드 저하 등 약점들이 드러났다. 여기에 용병 교체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6연패 수렁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KCC는 결단을 내렸다. 과감히 서장훈을 인천 전자랜드로 보내고 '제 2의 허재'로 불리는 강병현과 슈터 조우현 등 3명을 받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이상민을 버리면서까지 심혈을 기울여 영입한 서장훈을 보내는 또 한번의 고육책이었다.관련기사[1][2]

KCC, 사상 최다 4번째 정상…추..농구대통령 허재, '허 감독'의 성공..하승진, '거인'에서 '골밑의 제왕'으..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강병현의 가세로 빠른 농구가 살아났고 주장 추승균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장단신들의 조화가 이뤄졌다. 트레이드 후 KCC는 1월 9승2패의 놀라운 성적을 거두더니 결국 3위로 정규리그를 마쳤다.

단합된 KCC는 PO에서 서장훈의 전자랜드와 김주성의 동부를 넘는 저력을 보였다. 모두 3승2패까지 가는 접전이었지만 추승균의 클러치슛과 하승진의 골밑 파워 등을 앞세워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만난 삼성을 상대로 지난 시즌 4강전 3연패 치욕을 되갚으며 5시즌만의 챔프 등극의 감격을 누렸다.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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