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사진)익산보훈지청 최동철 보훈과장
(기고.사진)익산보훈지청 최동철 보훈과장
  • 김한진
  • 승인 2009.03.1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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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장동건이 ‘태풍’이후 4년만의 국내 복귀작으로 장진 감독의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선정했다. 여기에서 매력적인 젊은 대통령으로 변신하며 그의 연인 역으로 한채영이 캐스팅됐다.

장동건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몇 편있다. ‘인정사정 볼것 없다’, ‘아나키스트’, ‘친구’ 그리고 관객 1,200만 여명이 관람한 블록버스터 ‘태극기 휘날리며’ 등이다.

그 중 ‘아나키스트’는 최초의 한·중 합작영화이며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상하이에서 일제를 상대로 테러를 하는 독립운동가 5명을 다룬 작품이다.

아나키스트는 러시아어인 ‘트라보로 아나르키아 아나키스트’라는 말이 그 어원인데 ‘선장 없는 배의 주인들’이라는 뜻이며 무정부주의인 ‘아나키즘’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아나키즘은 “누구에게도 속박되지 않으나 누구도 속박하지 않는다”라는 사상을 기초로 어떠한 형태의 권력이나 억압에도 반대하고 자유로운 개인이나 집단의 자발적 협동과 자유로운 연대를 강조한다.

오늘날에는 시민의 NGO운동, 참여민주주의, 환경운동, 여성·소수자 운동 등의 이론적 기틀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아나키즘은 민족주의, 공산주의와 더불어 3대 항일투쟁사상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아나키스트는 일본이라는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민족의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숙명적인 과제아래 민족해방운동의 한 수단으로 아나키즘을 받아들였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아나키스트가 적지 않다. 신채호, 김좌진, 이회영, 유자명, 일왕 폭살사건의 박열, 상해 육삼정 의거를 일으킨 백정기 등을 들 수 있다.

3월 17일은 백정기의사가 상해 육삼정 의거를 일으킨지 76주년이 되는 날이다. 백정기의사가 1933년 상하이 홍커우(紅口)공원에서 중국주재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와 육군대장 아라키 사다오를 암살하려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백의사는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에 옥사하였다. 그의 나이 39세.

그는 죽음을 앞두고 주변의 동지들에게 말했다. “나는 얼마 더 못살겠다. 그러나 동지들은 서러워 말라. 내가 죽어도 사상은 죽지 않을 것이며 열매를 맺는 날이 올 것이다. 조국의 자주독립이 오거든 나의 유골을 해방된 조국 어디라도 좋으니 묻어주고 무궁화 꽃 한 송이를 무덤위에 놓아주기 바란다”

광복 후 1946년 백의사 유해는 윤봉길?이봉창의사의 유해와 함께 국내로 봉환되어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정읍시는 이 고장 출신인 백의사의 구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기념사업회를 결성하고 기념관을 건립하여 역사교육의 산실로 운영하고 매년 6월 5일 추모제를 열고 있다.

“타인을 위해 나를 버리는 희생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고 세상의 머릿돌이 되는 것이다”라고 톨스토이는 말했다. 대의를 위해 귀한 생명을 바치는 것은 인간 삶 가운데 가장 지고한 것이므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선열들의 고귀한 순국정신이야 말로 불멸의 가치로 남을 것이다. 그들은 인생의 목적이 행복과 쾌락이라면서 영원한 행복과 쾌락을 위해 조국과 민족에게 목숨을 던진 것이다.

삼월의 탄생화인 수선화?튤립?자운영 등과 함께 불어오는 봄 냄새가 애국선열들의 거룩한 행복과 쾌락의 향기 속에서 묻어나온다. 이 향기로 작금의 국난을 극복해 나가면 좋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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