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있는 정책실명제는 필요 없다
무늬만 있는 정책실명제는 필요 없다
  • 이한교
  • 승인 2009.03.11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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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항상 흐르는 물과 같아서, 계속 문제가 생기고 또 다른 사건이 연속적으로 밀려오는 법이다. 한 번 밀리면 계속 밀리게 되고, 이전 것은 쉽게 잊어버린다. 책임을 물으면 그건 내 소관이 아닌 전임자의 소관이라고 말하면 끝이다” 라고 말하지 않는 정치인들은 얼마나 될까.

정치 실세의 지시에 무턱대고 사업을 진행하다 낭패 보는 경우가 허다한 현실에서, 국민은 이들이 버리고 간 잔해를 주우며, 뒤치다꺼리나 하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

언젠가 야간에 실습실 개방을 학생에게 허락하며 문단속을 수차 당부한 적이 있다. 결과 다음날 문은 열려 있었고, 온풍기는 밤새 동작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학생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으나,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했다. 마지막으로 전달받은 학생은 열쇠가 없어 문을 잠그지 못했다 한다. 전열기를 끄지 못한 이유 대해선 깜빡 잊어버렸다는 것이 전부였다. 만약 전기 과열로 화재가 발생했다거나, 도난 사고가 있었다면 누구에게 그 책임이 있겠는가. 슬그머니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학생이 아니라, 관리책임자인 필자에게 그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책임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로는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 위법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 법률적 불이익이나 제재를 가하는 일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이 책임이 권력과 돈 앞에서는 강제되지 않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것이 근본 문제다. 이 책임이 한낮 약자에게는 적절히 악용되어 힘들고 불편하게 만드는 굴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힘 있는 정치꾼에게 무력화되거나 실종된 책임감으로 우린 불안한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선 어기고, 우겨야 한다. 무조건 목소리를 높여 책임을 전가하고, 회피하고, 시치미를 뚝 떼거나, 거짓을 진실처럼 얘기하는 달변이 필요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정치인들은 이번 4월 보궐선거에서도 여의도로 금맥을 찾아 가고자 위험한 곡예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합집산을 권력 장악용으로 이용할 것이다. 추종세력에 줄을 서서 명분을 축적할 것이다. 탈당. 분당. 합당으로 뜻을 이루려할 것이다. 앞장서서 본을 보여주거나, 희생하고 봉사하는 일은 서민들이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목적을 이루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2008년도 전국 14개 공항 중 11곳이 적자"라는 기사를 보았다.

한화갑 공항이라고 부르는 전남 무안공항의 이용률이 2.5%, 유학성 공항이라고 하는 예천 공항은 2004년 폐쇄, 김중권 공항이라는 울진공항은 85% 공정에서 공사 중단, 김제 공항 역시 공사가 중단되어 지금은 157만m2 면적에 배추와 고구마를 심도록 농민에게 임대했다니, 이 천문학적인 국민세금의 손실에 대하여 누가 그 책임을 져야할 지를 묻고 싶다. 지금이라도 정책추진자에게 맞춰 엉터리 용역을 맡았던 전문가들을 불러 따져야 한다. 그 당시 관계 공무원들을 불러 정황을 물어봐야 한다. 고속전철의 부실공사, 용산철거민 희생자, 집집이 쌓여가는 생활 빛, 내 남편 실직 등의 원인을 찾아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자유에도 책임이 따르는 법이거늘, 국민이 살기 어려워 아파하고 억울해하는데 책임이 없는 것처럼 치고받고 싸우기에 급급한 정치인들은 이 세상에 필요 없다는 얘기다.

사회는 책임과 믿음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오르지 정치권력에만 관심을 둔 정치꾼은 필요 없다. 대책 없이 모든 것을 정치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할 때, 결국 나라는 더 큰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국민이 평안을 누리려면 인기에 영합하여 추진하려는 정책은 발부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정책을 권력의 힘으로 밀어 붙이려는 형태가 먼저 사라져야 하고, 반드시 실명제를 도입하여 그 책임을 물어야 이 나라가 바로 서게 될 것이다. 요즘 지자체마다 유행처럼 정책실명제를 내걸고 변해보겠다는 의도는 바람직하지만, 무늬만 실명제 같아 안타깝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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