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운동과 먹거리 주권
학교급식운동과 먹거리 주권
  • 김흥주
  • 승인 2009.03.09 16: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들어 먹거리 위기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서 먹거리 위기란 농업의 세계화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식량 수급이 불안정해짐으로써 나타나는 먹거리 ‘보장’의 위기와 초국적 거대 농기업이 지배하는 글로벌 농식품체계에 종속됨으로써 심화되는 먹거리 ‘안전’의 위기를 포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의 먹거리 위기의 극복은 단순히 생산량 확대와 세계적 유통 확산보다는 먹거리 주권이 제대로 확립될 때 가능하다.

먹거리 주권을 위한 우리 사회의 노력은 그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70년대 이후 자발적으로 성장해온 유기농업 운동에서부터 90년대에 등장한 소비자 생협운동, 2000년대 이후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는 지역먹거리 운동, 그리고 2008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그 예이다. 그러나 먹거리 주권을 확립하기 위한 가장 조직적이고 제도적인 운동은 지난 2002년 이후 지역에서부터 활성화되어 전국적으로 성장한 학교급식운동을 들 수 있다.

학교급식운동은 단순히 안전한 먹거리를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교육운동이나 소비자운동을 넘어서는 것이다. 핵심은 운동을 통해 지역중심의 새로운 먹거리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며, 아이들에게 체계적인 먹거리 교육을 통해 이러한 대안체계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아가 먹거리 정치의 일상화를 통해 지역의 공공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주의를 확산하며,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를 통해 지역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먹거리 선진국은 무엇보다 학교급식을 통한 지역먹거리체계(local food system)의 구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미국의 ‘농장-학교(Farm to Schoo1)’ 연결 프로그램은 지역산 제철 농산물을 우선 공급하며, 이를 지역 내에서 확보하기 위해 생산체계의 전환과 계획생산 및 소비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학교급식은 ‘건강에 좋은’ 먹거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지역 먹거리를 최우선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역 먹거리야 말로 생산자와의 관계적 신뢰 속에서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고, 지역 생산자의 생존을 보장하며, 먹거리의 지역 순환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냄으로써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일본은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을 통해 지역 농산물을 학교급식에 활용하도록 제도화하고 있으며, 지자체 교육위원회에서 이를 강제하고 있다. 핵심은 제도나 강제가 아니라 생산자나 급식관계자, 학부모, 학생, 교사 등이 학교급식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지역먹리체계를 만들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데에 있다. 나아가 학생, 생산자, 소비자 모두가 참여하는 교육과 체험을 통해 먹거리 주권을 확립하고 있다.

먹거리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듯 학교급식운동은 지역먹거리체계를 통해 먹거리 위기의 극복과 먹거리 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첫째, 지역먹거리체계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학교급식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급식은 건강에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기 보다는 지속가능한 지역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해야 생산자의 위기, 소비자의 위기, 지역의 위기를 학교급식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둘째, 먹거리에 대한 복지적 접근, 즉 먹거리복지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와 교육은 사회적 형평의 마지막 보루다. 학교급식 또한 먹거리 주권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형평을 이루어야 한다. 이 점이 학교급식에 대한 정부지원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설명해준다.

우리의 학교급식운동은 지난 몇 년 사이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제정운동을 통해 신선하고 안전한 먹거리 제공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고, 우리농산물의 우선 공급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형 공급체계에 의존하고 있으며, 과학적 검사체계라는 시스템적 신뢰의 확보에만 매몰되어 있다. 이제는 지역순환형 먹거리체계 속에서 관계적 신뢰, 대면적 신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단순히 법과 제도개선, 예산확보의 문제를 넘어 지역종합발전과 먹거리 종합정책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점 때문에 학교급식운동은 이제 시작단계라고 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