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와 국제결혼가정에 대한 단상
오바마와 국제결혼가정에 대한 단상
  • 박규선
  • 승인 2009.03.02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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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정확히 4개월 전의 일이다. 미국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절망적인 세월을 견뎌내야 했던 흑인들은 물론, 변화를 바라는 많은 백인들까지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했다. 사실 세계 최강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자행되거나, 그들의 의식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인종차별의 벽은 높다. 미국 역사상 흑인들에게 참정권을 준 것도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소위 와스프(WASP)가 지배해 왔다. 와스프란 백인(White)이자 앵글로색슨족(Anglo-Saxon)이며 청교도(Protestant)를 이르는 말로 미국 사회 상류층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들의 뿌리는 개신교라는 이유로 영국에서 쫓겨나 미국에 상륙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서부 개척이라는 명분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의 씨를 말리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는 인종 차별의 장벽을 넘어서 232년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 장면들을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전했다고 한다. ‘역사는 그 밤을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살아 있건 죽었건, 흑인들의 영혼은 울었다. 그리고 웃고 아우성을 치고 춤을 추었다.’ 그랬을 것이다. 죽어서도 중음신으로 떠돌던 영혼들이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몸을 놀렸을 것이다.

세계 최강국이자, 가장 민주주의가 발달한 미국에서 일어난 4개월 전의 혁명적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조차 지난 수백 년 동안 유색인종이 주류로 들어가지 못한 것을 보면 자기중심적 사고가 개인과 사회를 얼마나 강고하게 억압하는지 실감하게 된다. 말이 민주주의지 본질은 철저한 차별의 사회였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색깔 중에 ‘살색’을 보통명사화해 쓰고 있는 것만 보아도 나와 다른 민족에 대한 편견을 읽을 수 있다. 그런 우리나라가 이제 다민족 국가로서의 발을 내딛고 있다. 특히 우리 전북과 같은 농촌 지역은 그 정도가 심하다. 전라북도에만 국제결혼 가정이 3000여 세대에 이른다. 그러니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했듯이 ‘살색’이란 차별적인 지칭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국제구호 단체인 월드비전의 일원으로 며칠 전에 베트남에 다녀왔다. 잘 알다시피 베트남은 6?25때 참전국으로 우리를 도왔다. 그러나 미국과의 오랜 전쟁으로 국토는 피폐화됐고, 경제는 한없이 후퇴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이 나선 것이다. 이번 방문단의 임무는 교육 여건이 열악한 현지에 학교를 세우는 교육지원에 맞춰져 있었다. 그들에게 힘이 교육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그런 일을 하면서도 필자는 자꾸 우리나라에 시집와 사는 베트남 여성들을 생각했다. 그들이 낯선 땅에서 겪고 있는 고통의 뿌리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에서 본 베트남 사람들은 인정도 많고,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살고 있었다. 가난하다는 것이 불편할지 몰라도 불행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것은 또 한편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문화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결혼 가정 자녀들의 취학이 늘고 있다. 그리고 현재에도 150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학교에 다닌다. 그러나 이 학생들과 그들의 어머니를 보는 사회의 시선은 눈은 뭔가 다르다. 물론 초기 미국사회처럼 차별화 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에게 무엇을 강제하는 것도 없다. 그렇다고 그들의 고충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낯선 땅, 낯선 사람, 낯선 언어 등에서 오는 문화적 아노미는 실로 크다.

우리도 이제 단일민족의 의식을 버려야 한다. 세계를 품으려면 우리가 먼저 열고 나가야 한다. 지금 자라고 있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 중에 버락 오바마와 같은 인물이 자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따뜻하게 다가가는 만큼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지금 어렵게 살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와 어머니들을 껴안음으로써 그들의 영혼이 활짝 웃게 되는 그런 사회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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