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거짓말이 필요하다
하얀 거짓말이 필요하다
  • 이한교
  • 승인 2009.02.11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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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얘기다. 어머니께서 이웃집에서 망치를 빌려오라하면, 투덜대며 가기 싫다는 몸짓으로 반항하던 때가 있었다. 이런 날 어머니께서는 부지깽이를 들고 다그치며, 반 강요하다시피 심부름을 보내곤 했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사립문을 나서면서도, 가기 싫어서 미적거렸다. 한달음에 갈 수 있는 이웃집을 서성이거나 놀다가 반나절이 지나서야 돌아 온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물건을 빌려오라는 심부름이 그렇게 싫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생일이나 제삿날 떡을 나눠주는 심부름은, 추운 겨울에도 신이나 근방 동네 한 바퀴를 ‘휙’ 돌고는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서 또 심부름시킬 일 없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세상을 살다보면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이 있는 법이다. 그 시절 나에게 남의 집에 가서 무엇을 빌려오라는 것은 죽고 싶을 정도로 창피한 일이었다. 결국, 그 집 대문 앞을 기웃거리다 돌아와서는 누가 빌려갔다거나, 아무도 없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이런 나에게 어머니는 화를 버럭 내시거나 욕을 퍼부어 댔다. “저런 썩을 놈의 자식 심부름하나 제대로 못 하고…….” 그래도 뒤돌아서면 생선의 가운데 도막을 먹이려 하셨던 어머니께서, 거짓말은 절대 나쁜 짓이라고 귀에 딱지가 지도록 가르쳐주셨다.

그러나 나는 달걀을 주머니에 숨겨서 구멍가게에 가 군것질을 한 기억도 있다. 예전엔 닭을 놓아 먹여서 특별히 알을 낳는 곳이 따로 없었다. 닭들이 알아서 적당한 장소에 알을 낳기 때문에 집안 곳곳을 살펴봐야 했다. 특히 은밀한 곳에 알을 낳는 경우 어머니는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셨다. 혹시 알 낳는 곳을 모르느냐고 물으시면, 시치미를 뚝 땠지만 금방 알아채셨던 어머니,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이 얼마나 어설펐겠는가 싶어 절로 웃음이 나온다.

거짓말에도 종류가 있다. 그중의 하나가 하얀 거짓말이다. 이 거짓말을 보통 좋은 거짓말이라 한다. 가령 엄마가 안고 온 아이를 보며 무조건 참 잘생겼다고 말한다든지, 노인에게 염색 하니 훨씬 젊어 보인다거나, 지금은 힘들지만 너는 분명히 성공할 것이다. 불치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환자에게 많이 좋아졌으며, 얼마든지 회복 가능하다고 말한다거나, 우리 경제가 훌륭한 정치가들로 말미암아 하반기에는 회복될 터이니 더욱 열심히 하자던지……. 아무튼 이 하얀 거짓말은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거짓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통계에 의하면 우리 국민은 외국인과 비교하면 새빨간 거짓말이 더 많다는 것이다.

얼마 전 MBC 스페셜에서는 좋은 소문과 나쁜 소문에 대하여 확산 속도를 비교분석한 결과를 방영했다. 나쁜 소문은 좋은 소문에 비해 5배 이상의 확산 속도를 가지고 있으며, 불안감이 높은 집단일수록 4배 정도 나쁜 소문을 빨리 듣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새빨간 거짓말의 무서운 확산 속도로 인하여 목숨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며, 진실이 왜곡되어 절망 속에서 땅을 치며 통곡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용산 철거민 참사를 보아도 그렇다. 유족을 앞에 두고 벌이는 거짓말이 어지럽다. 국민은 다 알고 있는데 모른다고 하니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일부 힘 있는 몇 사람은 끝까지 명명백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아니라고 거짓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 국민을 핫바지로 보고 있다면 슬픈 일이다. 만약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아니 말만 잘하는 것을 매력쯤으로 생각하는, 책임감이 없는 그들의 모습이 진실이라면 이 또한 부분적인 사이코패스가 아니겠는가.

새빨간 거짓말은 또 다른 죽음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물론 거짓을 말해야 되는 피치 못할 이유가 있겠지만,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다는 것은 더 큰 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혹, 본인들이 국가를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염려까지 된다.

아무튼 지금 우리는 거짓말에도 아름다운 거짓말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확산 시킬 때라고 본다. 들어서 행복하고, 용기를 얻으며, 세상이 아름다워진다면, 하얀 거짓말을 아낌없이 쏟아 내야 할 것이다. 어려운 경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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