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의 사회학
연쇄살인의 사회학
  • 김흥주
  • 승인 2009.02.05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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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자 7명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강호순의 연쇄살인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경기도 화성과 유영철의 연쇄살인, 경기도 안양 초등학생 대상의 ‘묻지 마’ 살인 등 기억하기도 싫은 끔찍한 연쇄살인이 계속되고 있다. 경제도 어려운데 연쇄살인의 공포마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강호순의 연쇄살인을 다루는 우리 사회의 집단 광기다. 흉악범 강의 사건은 그동안 어렵게 쟁점이 되어 왔던 범죄자의 인권 문제를 간단하게 뒤엎고 있다.

강호순이 검거되고, 그의 연쇄살인 행각이 들어나자 상당수 언론매체들은 “증거가 명백한 흉악범의 인권보다 사회적 안전망이 우선이고 그의 여죄에 대한 제보도 기대된다”며 과감하게 강의 사진을 공개했다. 분위기가 이같이 흘러가자 피의자에게 모자와 마스크를 씌워왔던 경찰도 법무부 등과 중범죄자 얼국 공개를 위한 근거법 마련 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대다수 국민의 격한 분노에 기대어 그동안 어렵게 지켜왔던 범죄자의 인권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범죄자의 인권문제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범죄로 인해 사회적 공익이 침해되는 부분을 주목하게 되면 범죄자 개인의 인권보다 사회적 보호가 중요시된다. 범죄자의 정보를 낱낱이 공개하여 대다수 사람들이 범죄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개인의 천부적 권리로서 범죄자 인권을 고려한다면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얼굴이나 신상정보 공개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동안 범죄자 개인 인권을 강조하던 입장에서 후퇴하여 흉악범에 한정해 얼굴을 공개하는 것을 공론화 하려 한다. 사회적 공익을 중시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공론화 과정을 거치더라도 흉악범 인권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쉽지 안다는 데에 있다. 여기에다 지금과 같은 사회적 분노가 지속된다면 일반 범죄자의 인권까지 침해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집단 광기가 어렵게 지켜온 개인 인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강의 연쇄살인은 사형제 존폐문제도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사형제 폐지론이 힘을 얻어 왔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시민사회의 성숙으로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형수도 인간인 이상 인권차원에서 보호대상이 될 수 있으며, 격리를 통해 사회 보호를 할 수 있다면 굳이 생명까지 빼앗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 민주화의 진전과 정치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사형제도 폐지론이 논의된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군사정권에 의해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정치범과 사상범에 대한 사형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흉악범 강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사형제 폐지론을 일거에 뒤엎고 있다. 연쇄살인과 묻지 마 살인과 같은 흉악범 사형은 국민보호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쇄살인과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적 살인 사건이 일어나제 되면 언제나 우리 사회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집단 광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러나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한다고 해서, 그 흉악범을 처형한다고 해서 연쇄살인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을까?

이제는 흉악범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에서서 나아가 차분하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은 치안이나 교육 등 시민들을 일차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불특정 다수를 위한 범죄행위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두려움을 느끼는, 그래서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위험임을 인식하는 일이다. 국가가, 사회가 나서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없는 사회통합을 지향할 때, 그리고 더불어 같이 사는 사회안전망을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갈 때만이 사회에 만연한 적대적 증오와 광기가 희석될 수 있다.

연쇄살인과 묻지 마 살인은 이러한 점에서 ‘사회적 살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회적 살인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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