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근 도의원> 익산의 백제문화중심 도시론과 ‘미륵사지의 대발견’
<김연근 도의원> 익산의 백제문화중심 도시론과 ‘미륵사지의 대발견’
  • 이수경
  • 승인 2009.02.0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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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은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1,400년전으로 돌아가 있다. 금마 미륵사지석탑에서 긴 잠을 깨고 세상에 선을 보인 사리장엄구는 한국뿐만 아니라 멀리 일본과 중국의 고대사 연구자들까지 뜨겁게 흥분시켰다. 나는 미륵사지석탑에서의 놀라운 발견이 있은 후로 내가 금마와 왕궁을 지역구로 하는 정치인이라는 사실이 너무 너무 기뻤다. 역시 금마와 왕궁은 심상치 않은 고장이었고,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내가 그 곳을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깨가 절로 들썩거렸다.

나의 이런 기쁨과 흥분에는 당연히 그만한 근거가 있다. 많은 분들이 미륵사지의 발견은 해방 이후 한국 고대사에서 가장 소중한 대발견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 곳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와 다른 유물들은 지금 엄격한 보호를 받으며 전문가들의 손에 의해 정밀하게 조사되고 있다. 이 조사가 끝나면 한국 고대사 연구는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만방이다.

물론 이번 발견으로 조금 어색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서동축제를 벌써 십수년간 계속하면서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철썩같이 믿어왔지만 이번 발견에 그런 아름다운 로맨스는 한 줄도 없다. 한편으로는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선화공주가 백제무왕에게 시집왔다는 사실이 거짓이라는 증거도 없다.

지방호족들의 연합체적인 성격이 강했던 백제의 왕이 정치적 힘을 기르기 위해 장가를 한두 번 간 것도 아닐 것이고, 더구나 그 당시는 신라와 백제가 마지막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때다. 그렇게 따지면 이도령과 춘향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라든가, 또 이탈리아 베로나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러브스토리가 허구의 창작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줄리엣의 생가는 허름한 옛날 여관 하나를 사서 꾸며놓았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대에 충분히 있었음직한 이야기라고 믿고 있는 것이고, 또 실제 그런 비극적인 사랑이 왜 없었겠는가.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 이야기들은 늘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 금마의 미륵사지는 이제 선화공주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에 또 하나를 더해서, 백제의 문화와 역사를 밝혀줄 국보급 유물을 확보한 셈이 아닌가. 이번에 발견된 사리봉안기는 어쩌면 대영박물관이 루브르박물관을 다 준다 해도 바꾸지 않겠다는 그 유명한 로제타 스톤이 될지도 모른다. 로제타 스톤 하나로 인류는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비밀을 풀었다.

이번 설날 백제의 선조들은 우리에게 정말 귀한 선물을 보내주신 셈이다. 이제 우리가 그 분들께 편지를 써야 할 때이다. 이를 위한 첫 번째 할 일은 당연히 신비에 쌓인 역사의 비밀을 밝히는 일이다. 이 유물이 어떤 시대적 배경과 사연들을 갖고 있는지 밝혀 삼국통일 이후 본의 아니게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난 백제사의 당당한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 이제 역사와 문화도 정확한 스토리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감동을 주지 못한다. 이번 대발견을 통해 선화공주의 로맨스뿐만 아니라 ‘제4의 왕도’로서 ‘익산백제’가 엄존했었고 익산이 진정한 백제문화의 중심지였다는 확고한 역사적 사실까지도 정확하게 밝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둘째는 익산을 국보의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금마와 왕궁은 그 심상치 않은 지명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했다. 전북도에서도 이 유물을 유네스코에 등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익산을 백제문화의 중심으로 세워 올리는 일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 발표에 깊이 공감한다. 이번에 발견된 유물은 당연히 국보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1965년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발견되어 현재 국립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국보 123호와 함께 익산의 자랑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국보가 돌아오려면 먼저 익산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이 국립박물관으로 승격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이번 기회를 통해 익산이 백제문화권의 중심이 되는 일이다. 부여나 공주 모두 백제의 수도로서 짧은 기간 있었을 뿐이다. 백제의 역사가 가장 아련하게 남는 곳은 이곳 익산이다. 이곳에서 백제인들은 나라의 멸망을 지켜보아야 했던 만큼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 결정체가 바로 금마의 미륵사지이다. 백제는 정치적으로 패했지만 문화적으로는 일본을 지도했고 그 근거가 되었던 땅이 바로 이곳 금마이고 왕궁이며 익산이다. 누가 뭐라 해도 백제문화권의 중심지는 당연히 익산이 되어야 한다.

김연근(전라북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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