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역사 전주서 바로 세우자
조선역사 전주서 바로 세우자
  • 한성천
  • 승인 2009.01.2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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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도(千年古都),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도시, 대한민국 전통문화도시, 맛과 멋의 고장….

전라북도 전주시를 수식하고 있는 접두사들이다. 역사적·문화적으로 근거자료가 충분하다. 현존하는 유·무형의 문화·역사적 자원도 풍부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주를 일컬어 천년고도로 지칭하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없다.

기축년(己丑年) 새해, 전주시가 일명 ‘혈맥(역사)잇기사업’를 주창하고 나섰다. 송하진 전주시장이 ‘조선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올해부터 조선의 혼을 되살려 민족정신으로 승화시켜 나갈 수 있도록 70만 전주시민이 힘을 모아야 하겠다.

21세기는 ‘문화’가 최고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상품이라고 미래학자들은 예견하고 있다. 전주는 대한민국 어느 도시와 비교해 문화·역사적 자원이 풍부하다. 전주시가 전통과 문화를 미래가치가 높은 상품으로 복원하고 현대화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조선 혼(魂) 말살정책 일환으로 조선건국의 시발지였던 전주를 크게 훼손했다.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목조 이안사의 출생지인 이목대(梨木臺)와 태조가 남원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돌아가는 길에 전주를 들러 머물며 이씨 문중 사람들을 불러 연회를 베풀며 조선 건국의 의지를 드러냈던 오목대(梧木臺)를 단절시키기 위해 산을 자르고 길을 낸 일이 그 실례다. 대(代)를 자른 것이다. 이곳에는 고종황제 친필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가 새겨져 있는 비석이 서 있다. 또 당시 전주성(全州城)의 ‘좌청룡’ 격이었던 용머리고개도 잘랐다. 그리고 객사의 우측 한 칸도 잘라내고 길을 냈다.

전주사람들은 일제의 만행에도 굴하지 않고 조선혼을 간직해왔다. 한옥마을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일제에 반발해 전주성 내 주요 상권 등을 일본인에게 내주고 성 밖이었던 풍남동과 교동일대로 나가 한옥들을 지어 생활하며 묵시적으로 일제에 대항했다.

그런 연유로 전주 한옥마을은 단순한 한옥구조 가옥밀집지라는 외형적 의미보다는 조선혼을 간직해온 역사지란 의미를 재각색해야 한다.

전주시가 이런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조선역사를 바로 세우겠다고 밝힌 것이다.

시는 이미 실천에 옮겼다. 먼저, 반환된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전주국립박물관에 특별공간을 마련해 지난 1월 20일부터 전시,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이어 올해부터는 리베라호텔에서 한벽루까지 도로구간을 지하화하고 지상을 복토해 이목대∼오목대 연결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또 용머리고개도 연결하고, 조선의 시작인 승암산부터 도심권까지 이어지는 노송천 생태복원사업과 역사스토리텔링사업 등도 세부사업 중 하나다.

한편, 일각에서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 때 무슨 혈맥잇기냐, 일자리부터 만들지”라는 지적도 있다. 1∼2년만 보자면 맞는 말이다. 이제 멀리 보자. 전주는 ‘산업화’와 함께 ‘전통 문화·역사 부활’을 병행해야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특수지역이다.

다행히 익산 미륵사지 서탑 해체복원과정에서 국보급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익산이 백제말 중심지였음이 입증됐다. 따라서 ‘전주 조선역사’와 ‘익산 백제역사’를 연계하는 21세기형 전북역사문화탐방지로 재탄생시키는데 지혜와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한성천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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