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것이 또 있다
돌고 도는 것이 또 있다
  • 김남규
  • 승인 2008.12.10 14: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돌고 도는 게 돈이고 사람 사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돌고 도는 것이 이뿐만 아니다. 대형마트에서 팔고 있는 물품들은 대부분 타 지역에서 돌고 돌아 온 물품들이다. 전북 농산물의 경우 타 지역 업체들이 매입해서, 전남과 충남 등 외지의 물류 창고로 갔다가 다시 지역 마트에 돌아와 전시 판매 된다. 대형마트의 지역산품 외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일부 대형마트에서는 지역 농산물을 구매했다고 자랑을 한다. 그 품목을 보니 전주복숭아와 백구 포도, 전주 배, 익산 날씬이 고구마 등이란다. 내 입맛만 그런지 몰라도 복숭아 하면 전주복숭아가 입에 맞고, 포도 역시 백구, 배는 전주 배가 입에 맞는 것 같다. 이들 품목은 예상컨대 대형매장에 없으면 지역 소비자들이 당연히 찾는 품목들이다. 이런 품목을 몇 개 판다고 해서 자랑 할 만큼의 소리를 내는 것은 생색내기의 다름이 아니다. 물론 시장의 속성상 가격과 품질 문제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결정되는 원리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대형마트에게 지역산품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단지 나만의 생각일까?



어느 음식점에 가더라도 나는 하이트만 찾는다. 왜냐하면 지역산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마신 술이 지역산품은 맞는데, 타 지역 업체가 납품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대형마트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하이트 소주나 맥주를 광주와 경기도 업체가 납품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음식점에서는 대형마트에서 주류를 구입해 파는 경우까지 생각해 보니 속은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돌고 돌아온 술을 내가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도내에서 영업중인 13개 대형할인매장 중 홈에버 전주점과 롯데백화점에서만 도내 주류업체와 거래를 할 뿐 나머지 11개소는 타 지역 업체들을 통해 주류를 납품받고 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대형마트들은 비싼 물류비용을 들여서라도 매입처를 단일화하는 것이 기업의 시스템이란다. 양보해서 이해를 해보자! 거래처가 지역별로 너무 많게 되면, 이로 인해 물류가 복잡해지고, 많은 거래처와 상품에 바코드를 새로 부여해야 하는 등 복잡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와는 반대로 답답하고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 대형마트가 취급하는 상품은 지역 업체가 접근 할 수 있는 길이 거의 없다는 말인데, 우리 지역산품은 항상 타 지역 업체에게 팔아야 하고, 지역의 중·소 유통업체는 납품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기업의 시스템 때문에 말이다.



‘남의 탓만 하지 말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충분히 공감하는 말이다. 그러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는 주어야 하지 않는가? 시장의 논리 경쟁의 논리가 가져온 양극화로 인해 전북은 성장의 기회를 박탈 당한지 오래다.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와 주공·토공 통합 방침으로 인한 ‘혁신도시 무산 위기’까지 아예 성장 기회의 마지막 싹까지 잘려나갈 상황이다.

지방 중소기업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공생의 철학 없이는 안 된다. 무한 경쟁과 무한 이윤 추구라는 기업적 논리가 열심히 일하는 중소기업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 우리는 잘 안다. 대기업은 하청 회사들에게 원가를 공개하게하고, 과도한 납품가 인하를 강요하고 자기 이익만 채워옴으로써 중소기업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대형마트 역시 마찬가지다. 횡포에 가까운 저가 납품 요구는 중소기업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이제 시장논리도 공생에 기초하지 않으면 같이 망할 수밖에 없다. 대형마트는 지역의 농산물 중간 유통업체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지역의 주류 도매상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시스템에 조금 복잡함을 주더라도 지역과 공생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보고 지역적 가치에 눈을 돌려주길 바란다. 청소용역 등 각종 용역 업체마저 타 지역 업체가 도맡아 버리고, 계속해서 지역자금이 유출되고, 돌아야 할 자금이 말라가면서 지역 중·소 업체가 다 몰락하고 난 다음에 대형마트는 혼자 살 수 있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