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4,322,413원
사라진 4,322,413원
  • 이한교
  • 승인 2008.11.11 15: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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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기 위해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사기(詐欺)라 한다. 사기란 남의 고통과 어려움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사욕을 채우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상대의 목숨까지 빼앗기까지 한다. 이러한 인간의 욕심의 끝은 어디인가. 모르긴 몰라도 사기꾼이 동시에 죽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아마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세상이라 하여도 그 수가 적어질 뿐 사기꾼은 어느 세상에도 존재하게 된다.

5년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800만 원이 연체되었으니 카드사로 나오라는 얘기였다. 놀라 한달음에 달려갔다. 필자의 이름으로 3장의 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고 갚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드발급에 사용된 통장은 잔액이 남아있지 않는 휴면계좌라 금전적인 손해는 보지 않았지만, 전주까지 오가며 해명자료를 제출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올해 초에도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옥션에서 유출한 개인 정보를 경찰청 사이버 테러 대응센터가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 뒤 수차례 보이스 피싱으로 의심되는 전화를 받았다. 절대 속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부드럽게 응대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즈음 보이스 피싱으로 피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으니 절대속지 말라는 전화를 또 받았다. 반드시 통화가 끝난 후, 남겨진 번호로 꼭 확인을 바란다며, 여기는 사이버 수사대입니다.” 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남겼다. 114로 확인해본 결과 맞는 전화번호였다. 며칠 후 사이버 수사대라는 곳에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쇼핑 물에서 유출된 개인 정보를 이용, 3 억 원이 필자의 통장에서 돈세탁 되었다는 것이다. 범인은 추적 중이며, 우선 사용하는 모든 통장에 대하여 입출금이 중지될 예정이라고 알려왔다. 당장 이를 막으려면 서류를 준비해 가까운 경찰서로 직접 가서 조사를 받으라는 얘기였다. 바쁘면 전화상으로 응대할 수 있도록 도와….”

“야, 이 ×××야 끊어”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바람에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던 자신에 대하여 화가 났다. 그 뒤에도 서너 차례 비슷한 전화를 받았다. 알고 보니 필자뿐만 아니라 집사람도, 이웃동료도 한두 번씩은 받아본 전화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느 누구도 속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4,322,413원을 사기당한 사람이 발생했다. 농사를 짓는 시골의 어른이시다. 지난 토요일 오후 한통에 전화를 받고, 발신자(사이버수사 요원으로 착각)의 요구대로 휴대전화를 통화 중인 상태로 유지하고, 오토바이로 읍내 은행까지 같다 한다. 시키는 대로 현금 지급기를 꾹꾹 눌렀고, 결국 1원의 잔고도 없이 통장의 모든 돈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절대 타인에게 말하지 말고, 명세표는 문서 세단 기에 넣어 버리라 했단다. 다음날(일요일) 은행과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넋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응시하던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실 이 금액은 이 어른이 1년 동안 농사를 짓기 위해 피와 땀을 흘려야 겨우 쥘 수 있는 엄청난 돈이었다.

모든 책임은 노인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출된 개인정보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보는 정부당국의 책임은 정녕 없는 것인가 묻고 싶다. 정말 빼앗긴 4,322,413원을 찾을 수는 없는 일인가. 도대체 누굴 원망해야 하나, 이처럼 우리 사회에 만연된 위험에 노출된 국민(서민)은 어쩌란 말인가?

최근 시행된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1.4%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기·수질환경 오염은 더해가고, 어린 자식을 가진 부모는, 혹 자동차사고는 나지 않을까. 유괴되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가장(家長)은 혹시 직장에서 해고되지는 아니할까 좌불안석이고, 과자 하나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나라, 인터넷은 강국이지만 악풀로 사람이 죽어가는 나라, 정치인은 끝없는 싸움질이요, 은행조차 믿을 수 없는 나라, 전화 오면 혹 보이스 피싱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는 나라, 어른 대부분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2006년 6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보이스 피싱으로 596억 원이나 피해를 본 나라에 사는 국민은 불안하다는 얘기다. 이제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선 정부가 나서야 할 때이다. 정부는 위험에 대비하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안정된 한국사회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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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torjong 2008-12-11 20:39:00
이교수님 좋은글 넘 감사합니다. 어두움이 물이 바다 덮은 같은 이시대에 한 구석을 밝히는 작은 등과 같은 살아있는 양심의 소리에 깊은 찬사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