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금융위기, 식량주권 : 위험한 삼각관계
스타벅스, 금융위기, 식량주권 : 위험한 삼각관계
  • 김흥주
  • 승인 2008.10.27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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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가 대단하다. 유럽과 아시아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에도 금융위기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 세계화된 경제가 실감나는 순간이다.

대다수 경제학자는 이러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탐욕스런 자본주의 모습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탐욕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체감지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칼럼니스트인 그로스의 ‘스타벅스 이론’은 가설수준이지만 흥미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이론은 간단하다. 최근 금융위기를 심각하게 격고 있는 국가와 지역에는 스타벅스 매장이 유난히 많으며, 이는 위기상황을 초래한 방만한 자본주의와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유의미한 지표라는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로 초토화된 윌스트리트 소재지 맨해튼에만 스타벅스 매장이 200개에 달한다. 스타벅스는 보고서로 밤을 새는 금융업 종사자, 잔뜩 쌓인 대출 서류에 시달리는 모기지 브로커들과 함께 벼락경기를 맞았다. 이른바 거품경제의 최대 수혜자라는 것이다.

또한 스타벅스는 미국의 금융자본주의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를 너무 남용했다. 미국위기 주범인 부동산개발업자와 금융업자들처럼 “매장을 열면 고객이 온다”는 모토로 부동산개발이 이루어지는 지역을 따라 매장을 난립시켰다. 그러나 주택시장처럼 스타벅스는 2006년 봄에 사업의 절정기를 맞은 뒤 가파르게 추락하고 있다. 실제 지난 2년 사이 스타벅스의 주가는 최고점 대비 74%나 폭락하였다.

그로스의 스타벅스 이론은 미국을 넘어 글로벌 금융위기도 같은 논리로 설명한다. 스타벅스 매장이 많은 나라들은 미국식 소비지향적 자본주의를 맹종하고 있기에 하나같이 미국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영국의 런던에는 256개에 달하는 스타벅스 매장이 있다. 지난 환란보다 더 총체적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의 수도권에는 253개의 매장이 있다. 경기과열을 빚고 있는 인구 140만 명의 두바이에도 스타벅스 매장이 48개나 된다. 반면에 금융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이탈리아나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복지국가군에는 스타벅스 매장이 거짓말처럼 하나도 없다.

금융위기의 원인을 글로벌 자본의 침투와 탐욕에서 찾으면서, 이를 스타벅스의 무한 성장과 추락으로 설명하려는 그로스의 이론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특히 시장경제를 맹종하는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논의하는데 아주 유용하다. 복지국가군으로 분류되는 스칸디나비아 3국이 상대적으로 글로벌 위기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로스 이론에 빠진 것이 있다. 스타벅스와 맥도널드로 상징되는 패스트푸드의 세계화가 초국적 거대 농기업에 의해 주도되면서, 제3세계 노동권과 식량주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타벅스의 화려한 커피 맛 이면에는 제대로 임금도 받지 못하면서 노예처럼 일만 해야 하는 농장노동자의 고통이 담겨있다. 스타벅스에서 제공하는 맛있는 쿠키 이면에는 세계 식량유통을 좌지우지하는 카길(세계 최대 식량유통업체)의 탐욕이 서려있다.

이런 점에서 스타벅스가 세계 커피시장을 지배하는 과정은 미국발 패스트푸드가 세계를 지배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소농붕괴, 지역농업 다양성 약화, 환경파괴, 농민의 궁핍화, 어린이와 여성노동 착취, 식품안전의 문제, 소비자 건강주권의 약화 등이 스타벅스 침투국가에서 흔히 나타나고 있다. 반면에 매장이 없는 이탈리아는 지역먹거리체계와 식량주권을 비교적 잘 지키고 있다.

지난 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는 건강주권과 식량주권을 지키고자 하는 시민 욕구가 분출된 것이었다. 그로부터 3달 뒤 미국발 금융위기가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다음 위기는 글로벌 식량체계로부터 올 것이다. 스타벅스를 지원하는 거대 농기업들이 세계의 식량유통을 틀어쥐고 있는 한, 우리나라와 같은 식량종속국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식량주권의 문제는 한미 FTA 협상과정처럼 경제논리로 설명해서는 안된다. 한번 무너지면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만의 식량주권 확보에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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