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전주 이강주(梨薑酒)
⑨ 전주 이강주(梨薑酒)
  • 김효정
  • 승인 2008.10.15 17: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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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하고 더운 날씨가 가을답지 않게 연일 이어지더니 가을을 준비할 여유도 없이 요즘 아침저녁으로 뽀얀 입김이 서릴 정도로 너무나 급작스럽게 가을이 와버렸다. 예전에는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계절의 흐름이 연속선상에 있는 듯 느껴졌는데, 요즘의 계절은 사계절이 뚝뚝 끊이는 불연속성산에 존재하는 듯하다. 이를 아는지 언제 가버릴지 모르는 가을을 즐기기 위해 많은 이들이 전주한옥마을을 방문하고 있는 요즘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그 지역의 맛, 멋, 향 등 그 지역 특유의 지방색을 체험하고, 자신의 집을 떠나 느끼는 객창감에 그 묘미가 있겠다. 외부인들이 생각하는 전주지역의 지방색은 무엇일까? 전주를 찾는 많은 이들은 전주하면 음식과 전통을 생각한다. 전주는 비빔밥, 콩나물 국밥, 한정식 등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헌데 전주를 전혀 모르는 외부인도 바로 입에 올릴 수 있는 유명한 전주만의 술이 있다는 사실! 전주를 대표하는 비빔밥만큼이나 유명한 그 술은 바로 전주 이강주(梨薑酒)이다.

이강주의 역사를 먼저 살펴보면, 전주이강주는 조선중엽부터 전라도와 황해도에서 제조되었으며, 우리나라 5대 명주로 손꼽히던 술이다. 호남의 술 가운데 이강주? 죽력고? 호산춘하면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는데, 특히 평양 감홍로, 전라 이강주와 죽력고를 최고의 술로 쳤다고 한다. 이강주는 전통증류식 소주에 배, 생강, 계피, 울금(심황)을 넣고 꿀을 가미한 후 장기간 숙성시켜 만드는데, 재료에서 보듯이 배와 생강을 넣었다 해서 이강주(梨薑酒)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강주는 ‘감저종식법’ ‘증보산림경제’ ‘임원십육지’ ‘군학회등’등에 나타나고 있는데, 이 문헌들을 통해 이강주의 제조법을 알 수 있으며, 이름처럼 배와 생각이 주재료임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최남선이 집필한 『조선상식』을 보면 이강주를 ‘이강고’라고 표현하고 있는 걸 살펴볼 수 있는데, ‘고(膏)’라는 말은 한방에서는 오래 달여 찐득찐득해진 상태를 말하지만, 술에 있어서는 증류한 고급술을 의미한다.

선조 때부터 상류사회에서 즐겨마시던 고급 약소주인 이강주는 전통소주 특유의 향에 배에서 우러나오는 청량감과 생강의 매콤함, 계피의 강한 향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여기에 벌꿀이 가미되어 은은한 향과 부드러운 맛으로 입을 즐겁게 해주고, 울금에서 나오는 담황색 색조가 눈을 즐겁게 해주어 예로부터 ‘품위와 격이 있는 술’로 칭송받았던 바, 사대부와 부유층에서만 즐길 수 있었다고 한다. 대중적으로 판매되는 희석식 소주와는 만드는 방법 자체가(발효주를 증류하여 얻는 증류식 소주) 달라서 얻는 장점도 있지만, 25도의 이강주에 배, 생강, 계피와 함께 들어가는 울금의 약효 덕분에 보통 술을 마시면 정신도 같이 취하는데 취해도 정신이 맑아지는 장점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주이다. 이렇듯 역사와 전통, 특유의 맛과 향을 지닌 이강주는 1995년 남북고위급회담에서 건배주로 사용되기도 했다.

드문드문 반백이 되어가는 어느 중년 신사의 머리처럼 조금씩 조금씩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가는 가을 초입이다. 한번쯤은 거주하는 곳을 떠나 낯선 곳을 떠돌고 싶은 역마살을 자극하는 요즘이다. 이번 가을엔 전주한옥마을에 들러 한옥민박에서 머물며 나무 끝에 걸린 가을달도 완상(玩賞)하고, 전주만의 역사와 지방색을 지닌 전주 이강주 한잔을 곁들여 완벽한 객창감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여행에 술만큼 좋은 친구가 있을까?!

<글:박소영 전통술박물관 홍보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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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수 2009-05-17 15:25:00
역사와 전통 특유의 맛과 이강주 남북고위급회담에서 건배주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