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을 살려야 한다
농촌을 살려야 한다
  • 이한교
  • 승인 2008.10.1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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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가을 들녘 황금물결은 아름답다. 해 질 녘 햇살에 반사되는 들판은 황홀하다. 갈바람에 하느작거리는 억새 사이로 높고 푸른 하늘이 유난히 맑다.

한 노인이 경운기 시동을 걸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몇 번이고 반복해 시동을 걸어보지만 결국 포기하고 만다. 경운기를 길섶에 밀어두고 집으로 향하는 노인의 모습이 쓸쓸하다. 텅 빈 집에 돌아온 노인은 시어빠진 김치를 찬으로 저녁을 해결한다. TV를 보다가 그대로 잠이 든다. 혼자다. 마누라는 3년 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자식들까지 직장 따라 도시로 나갔다. 농촌에 남아 농사를 짓는 이 노인의 나이가 팔십이다.

이처럼 농촌이 무기력해지고 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심한 고령화로 10년 후를 생각해 보면 암담하다. 지금까지 말만 잘하는 정치인들 때문에 농업부채만 늘었을 뿐이다. 부채전액을 탕감해 주겠다며 표를 구걸하던 전직대통령이 살아 있는데도, 농촌은 지는 꽃처럼 시들어 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도시의 휘황한 불빛을 따라 불나방처럼 날아가 버렸다. 빈집이 늘어가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염려하는 이들이 많지만, 선진국처럼 농업을 지키려는 정부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시야가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름진 옥토를 갈아엎어 공장을 짓는 것만이 잘사는 방법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은 날에 씨조차 뿌릴 땅이 없어 기근이 닥쳐올 것이다. 농촌 사람들조차 뼈가 휘도록 고생하느니, 차라리 도시에 나가 붕어빵 장사라도 하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에 농촌을 탈출하게 될 것이다. 농토는 잡초로 무성해지고, 농산물은 수입에 의존하게 되고, 국토는 공장건축과 무분별한 개발로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땅은 오염되고, 씨를 뿌려도 새싹이 나지 않는 지경에 이르러, 농촌은 사라지고, 전 국토가 도시 공화국이 될 것이다.

농촌을 살려야 한다. 과감히 버려야 가능하다. 무엇이든 ‘빨리빨리’하겠다는 조급증을 버리고, 모든 일을 합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늦으면 손해 본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2년 5개월 만에 428km의 경부고속도로를 완공 했다고 자랑하고 있을 때, 13세기에 착공한 독일의 쾰른성당은 아직 마무리 공사를 계속하고 있는 느림의 의미를 배워야한다. 대충대충이 아니라 꼼꼼히 따져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날림공사를 살아가는 방법쯤으로 인식하거나,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책임지지 않는 태도 또한 버려야 한다. 아집으로 전임자의 정책은 무조건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못난 정치인들 또한 버려야 한다. 무엇이든 남의 탓으로 돌리기전 내 탓이라는 겸손을 미덕으로 아는 세상이 되어야하고, 진정한 리더를 내세우기 위해 얼음 같은 차가운 심장도 필요하다. 따르고 존경할 만한 정치인을 발굴하기 위해 학연, 지연, 혈연 등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지금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농업정책도 따라 바뀌는 나라에서 혼란을 격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더 늦기 전 선진국을 바라볼 때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GDP의 2%에 불과한 농업을 지키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유럽은 농촌을 위해 농업소득의 40%에 해당하는 정부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보호주의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농업보호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우리처럼 농촌을 단순한 수익성으로만 따지지 않는 이유다. 전 세계적으로 식량무기화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농업정책을 너무 짧게 보고 있는 것 같다. 농업은 국토의 균형적 발전과 수질정화, 공기정화 등 우리에게 무한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 다는 얘기다.

우리는 농촌을 긴 안목으로 보는 농부의 아들(정치인)의 눈이 필요하다. 우리의 미래가 농촌에 있음을 알고,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생각과 지식을 적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하고, 노력한 만큼 수입이 보장되도록 특별한 혜택을 주어야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삶의 질이 황금물결처럼 향상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농업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관이 필요하다. 현존하고 있는 관련기관은 이유가 어디에 있던지 근본적으로 실패하고 있다. 이제라도 어느 누구도 농업정책의 중요성에 대하여 시비를 걸지 않도록 보호받는 기관을 만들어야 우리의 미래가 있음을 정치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지금처럼 성장위주의 정책만 계속 고집하는 정치인들이 득세할수록 농촌은 무너진다. 농촌을 살리기 위해선, 선진국처럼 미래를 보는 눈(정치인)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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