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의 역사에는 왕자의 난이 어김없이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아들 그리고 왕비와 궁정 대신들이 왕위를 둘러싸고 곁고 짜면서 혈투를 벌인다. 역사에 그만한 비극이 없다. 비극의 발단은 왕세자 책봉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부지기수다. 소위 ‘왕세자의 난’이라고 일컬어지는 ‘방원의 난’은 아버지 태조가 막내왕자 방석을 왕세자로 삼은 데에 대한 불만으로 일어난다. 그의 공은 아버지 태조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동생 그것도 같은 배에서 난 것도 아닌 막내 방석에게 왕위가 돌아가는 것에 분개했다. 그는 1398년 사병을 동원해 난을 일으키며 왕세자 방석과 정도전을 비롯한 그 지지자들 그리고 7번째 왕자 방번까지 죽인다. 왕세자 자리는 2번째 왕자 영안대군 이방과에게 양보하여 왕위에 대한 자신의 욕심을 위장한다. 그해 9월 태조는 왕위를 이방과에게 물려주었고, 이방과는 정종이 되었다. 그러나 왕자의 난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2년 뒤인 1400년 다른 왕자 회안대군 방간이 왕위에 야심을 품고 다시 난을 일으키자 당시 권력을 잡은 이방원은 이를 쳐서 스스로 세자 책봉을 받으며 후일 등극하여 태종이 된다.
왕위를 놓고 아들이 아들을 죽이는 현장이 궁정이다. 이를 보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통만한 것이 있을까! 역사는 태조의 왕위 이양을 ‘그 해 9월 태조는 왕위를 이방과에게 물려주었고’라는 한 문장으로 표현하지만 예술은 그 행위 속에 숨은 비극을 다룬다.
이스라엘 역사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그렇게 해서라도 왕이 되겠다고 한 압살롬이 있다. 아들 중에서도 외모가 출중하고, 아름다운 긴 머리를 자랑하는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의 사랑과 백성들의 존경을 한꺼번에 받던 터였다. 다만, 첫째 아들이 아니라서 왕위를 계승받을 확신이 없었다. 압살롬은 결국 주위의 충동질을 이기지 못하고 쿠데타를 일으켜서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쫒아 다닌다. 권력을 위해 아버지에게 칼을 겨누는 압살롬은 도망 간 아버지를 찾지 못하자 그를 모욕이라도 하기 위해 궁에 남은 아버지의 후궁들을 범한다. 그런 패륜아임에도 다윗은 가신들에게 자식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한다.
프랑스 고전주의가 문학사에서 아직도 눈부시게 남는 것은 왕실의 비극을 소재로 다룬 데에 있다. 그리스 희랍 신화와 로마역사 또는 성경이 주요 소재로 다뤄지는 공통된 이유는 왕권다툼 그것도 형제간 부자간의 왕위다툼 때문이다. 후백제의 견훤과 그의 아들들이 보여준 비극이 로마의 역사에 있었다면 프랑스 고전주의의 대가 라신느는 틀림없이 이를 소재로 극을 썼을 것이다.
소리축제 개막작 ‘견훤’은 몇 가지 차원에서 엄지손가락 찬사를 받을 만한 작품이었다. 우선 새로운 소재의 발견이다. 게다가 역사가 짧은 ‘창극’이라는 장르를 하나의 종합예술로서 이렇게 완벽하게 성장시켜준 국악인들에게 감사한다. 솔직히 과거에는 국악을 애정 반 의무 반으로 좋아했다. 그러나 ‘견훤’은 달랐다. 금산사를 비롯한 영상자료의 섬세한 수집능력, 그 동안 출시된 역사영화 영상물의 활용 능력, 그리고 출연진들의 노래와 연기 능력은 훌륭한 정도를 넘어섰다. 극이 끝나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를 포함해 많은 관객이 기립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 ‘견훤’ 같은 창작 창극이 많이 나오기 바라며 그것들이 프랑스의 오페라 ‘레미제라블’, 브로드웨이의 ‘캣츠’ 그리고 우리나라의 ‘난타’처럼 장기공연에 성공하는 고전으로 남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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