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 박규선
  • 승인 2008.09.1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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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학급의 컴퓨터 부팅 시 떠오르는 화면에 이런 문구가 있다 한다.

“잃어버린 개념을 찾자.” 우습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고3 수험생들의 교실에 간혹 내걸리는 ‘재수 없다’는 그래도 각박한 현실을 가벼운 농담 섞어 이겨내고자 하는 귀여운(?) 몸부림이라도 있다. 그런데 이것이 만약 학생들 스스로 지어낸 문구라면, 분명 이들은 수업 시간 중, 혹은 담임교사의 훈화 시간에라도 “너희들, 왜 그렇게 개념이 없냐?” 라는 따끔한 질책 한 마디쯤은 들었으리라. 듣다보니 대체 그런 것도 같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적으로 듣다보니 분명 뭔가 문제는 있는 듯싶어 모종의 개선의 의지를 그렇게 밝힌 것이리라.

교육 현장에선 아이들이 예전 같지 않다고 아우성이다. 어느 학교의 교육실습생은 실습을 끝마치고 소감을 피력하는 자리에서 반은 엄살을 섞어서 말한 거겠지만 “선생님, 전 아이들이 무서워요.”라고 해서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교육 현실을 실감하곤 한다.

예전이라고 해 봤자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다. 불과 수삼 년 사이에 이렇게 질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다. 혹자는 이를 열린 교육의 대책 없는 열려있음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맞는 말인 것도 같다. 한때 우리 사회를 열풍처럼 휘감았던 열린 교육, 과연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모르지만 거둔 성과 못지않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또한 가정교육의 부재를 탓하며 결손가정의 증가와 같은 사회 환경적 요인을 꼽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가장 그럴 듯하면서 현실적 확신을 주는 이유, 인터넷과 같은 정보매체의 부작용으로 인한 감각적 자동화에 길들여진 학생들의 정서불안이나 왜곡된 욕구 분출에서 찾는다.

스스로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야만 하는 학생들, 이들의 공통점은 소위 집중력이 약하다는 사실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단일 대회 8관왕의 신화를 이룬 마이클 팰프스는 어렸을 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겪었다고 한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수영은 어쨌든 그를 최고의 수영 스타로 우뚝 서게 하였고 그는 승리했다. 그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 관심도 없다. 그에게는 오직 수영만이 있을 뿐이다. 그는 수영에 집중했고 그 결과 놀랄 만한 성공을 거뒀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 있게 보아야 할 대목이 있다. 소위 개념 없는 아이들, 말하기 쉽게 수업에는 관심도 없고 규칙도 지키지 않으며, 예의범절이라곤 눈꼽만치도 없고, 해서는 안 될 행동을 과장되게 하는 아이들, 이들은 겉으로 보면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분명 관심 있는 분야는 있다. 팰프스 처럼 단지 자신이 좋아할 만한 가능성 있는 것들을 좀더 다양하게 만나지 못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는 이런 다양한 가능성들을 염두에 두고 교육과정을 편성해야 한다.

다수의 평균적인 학생들을 염두에 두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댄다면 언제까지나 ‘개념 없는 아이들’ 탓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비상구는 없다. 절대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제대로 된 인간 교육’이라면 시대의 변화나 발전 과정에 맞춰 이제는 그 방법론을 바꿔야 한다. 아이들 탓만 할 것이 아니라 학교가, 그리고 교사부터 바뀌어야 한다. 더불어 교육관청이 제대로 된 지원 행정을 펼쳐야 할 것이다.

찾아오는 학교, 배우고 싶은 선생님이 되도록 학생들의 개성과 창의성,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하는 학교, 부단한 자기 계발과 연마로 지적, 정서적 조화로움을 겸비한 교사를 학생들은 원한다.

그리고 편협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제도나 시설 탓만 언제까지 부끄럽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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