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그 화려함의 이면에 대하여
올림픽, 그 화려함의 이면에 대하여
  • 김흥주
  • 승인 2008.08.2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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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 2008 베이징 올림픽이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100년을 기다려온 중국인의 희망과 열정이 담긴 탓인지 이번 올림픽은 어느 때보다도 그 화려함이 더 했다. 개막식과 폐회식에 보여준 폭죽의 난무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인간의 군무는 거대한 중국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베이징이라는 도시 공간 전체를 오로지 올림픽을 위해 재구성하고 재배치하는 모습 또한 사회주의 중국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지구촌은 그 화려함에 열광하였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편치가 않다. 올림픽의 과도한 정치화, 상업화, 민족화가 폭죽처럼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은 전쟁까지도 멈추게 하는 평화의 선언이자 아마추어리즘의 향연으로 인류가 즐길 수 있는 최대의 축제임은 분명하다. 여기에는 스포츠만이 가질 수 있는 공정성과 형평성의 원리를 통해 근대성이 가져온 분열과 파괴,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려는 순수한 의도까지 포함되어 있다.

인류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대리만족감 때문이다. 스포츠의 묘미는 단순함과 투명함에 있다. 긴장과 카타르시스 넘치는 드라마를 선사하면서도 과정이 투명하고 결론이 명백하다는 것이다. 정치, 경제 할 것 없이 납득하지 못할 일이 수두룩한 세상에 가장 단순하게, 명쾌하게 이해되는 세계가 바로 스포츠다. 때문에 올림픽은 인류가 가장 염원하는 이상세계를 구현하려는 노력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림픽을 다른 각도에서 곱씹어보면 또 다른 세계가 도사리고 있다. 평화축제라는 명분이 무색할 정도로 정치, 권력, 자본의 추악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도한 정치화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근대 올림픽의 시작 자체가 ‘정치적’ 이었다고 볼 수 있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 국민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쿠베르탱이 자국 중심의 올림픽을 부활시키려 한 것이며, 단지 명분을 고대 올림픽에서 찾아온 것뿐이다. 때문에 이후의 올림픽이 정치와 거리를 두기에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

올림픽이 인종중심의 배타적 민족주의 부활수단으로 활용된 대표적 사례가 나치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던 베를린 올림픽이었다. 냉전시대에는 올림픽이 이념전쟁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적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경기에서 이겨야 한다는 경쟁 제일주의가 스포츠를 전쟁수준으로 끌어가곤 했다. 과거 소련과 동독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 행해졌던 국가차원의 선수 훈육과정을 상기하면 이런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80년의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의 LA 올림픽은 정치적 이유를 들어 서로 불참함으로써 반쪽짜리 올림픽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냉전시대가 해체된 88 서울올림픽 이후, 이념이 떠난 자리를 메운 것은 지나친 상업주의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다국적 기업 사이에 맺어진 스폰서쉽 제도는 올림픽이 스포츠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회를 후원하는 다국적 기업을 위해 개최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올림픽 자체가 하나의 시장이 글로벌 자본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미디어 권력의 개입도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TV 중계권료는 천문학적 숫자이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불과 3000달러였던 TV 중계권료가 상업화의 원조로 불리는 1984년 LA올림픽에서 2억 8700만달러, 지난 아테네 올림픽의 경우 14억 9000만 달러로 증가했으며, 이번 베이징 올림픽은 중계권료가 17억 1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렇게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미디어는 이를 회수하기 위해 지나친 광고수주와 다양한 볼거리 만들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추어리즘의 향연장에 프로선수를 출장시키게 한 것도, 미국ㆍ일본 중심의 경기 스케줄이 짜진 것도 다 미디어의 압력 때문이었다.

상업화를 통해 막대한 자금을 축적하는 것은 IOC와 글로벌 거대자본이다. 정작 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와 도시는 천문학적 액수의 부채를 떠않을 수밖에 없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세금부담으로 남게 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챙기는 꼴”인데, 이번 베이징 올림픽의 경우도 막대한 재정적자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 때문에 중국 국가경제의 경착륙이 우려되기도 한다.

올림픽은 화려하지만 이러한 이면의 세계가 있다. 이런 추악한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와 인종, 종교의 벽을 초월하는 진정한 올림픽 정신의 복원이 필요하다. 배타적 국가주의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최근 국가 간 메달 경쟁이 거의 전쟁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지구촌 시민사회 건설에 가장 커다란 장애가 될 수 있다. 나아가 글로벌 NGO가 연대활동을 통해 거대 공룡 IOC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올림픽은 화려하기보다 순수해야 한다.

김흥주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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