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영어를 좋아하는 한국의사
유독 영어를 좋아하는 한국의사
  • 한성천
  • 승인 2008.08.2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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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93%, 일본 11%, 한국 0%.

한·중·일 3국의 흉부외과 의사들이 쓰는 의학용어 중 자국어가 차지하는 비율을 조사한 결과다.

이는 한 흉부외과 전문의가 지난해 흉부외과학회지에서 논문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이 논문은 한·중·일 3국간의 의학용어 일치비율과 실제 진료 현장에서 영어를 얼마나 사용하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나라가 일본과 용어 일치도가 높고 실제 임상 현장에서 중국, 일본에 비해 영어를 사용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사들이 유독 영어를 좋아한다는 해석이다.

순수 자국어만 쓰는 비율은 중국이 93.0%로 단연 최고다. 자국어와 영어를 합성해 사용하는 일본의 경우에도 10.8%에 달했다. 한국만 129개 용어 중 단 하나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결과와 관련해 도내 대학병원 한 교수는 “서구에서 확립된 현대 의학의 도입을 가장 주도했던 일본이 20세기 초 한국을 강점해 일본식 한자 용어가 일방적으로 유입되었지만 해방 이후 한동안 중국과 외교적 단절 상태가 지속돼 나타난 현상으로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의학용어 한글화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환자의 의학적 상태와 처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이해하도록 진료차트 한글작성을 한 때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의료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를 검진한 의사가 기록한 진료차트를 보자.

‘Pt의 BP를 check하고 urine와 Emergency CBC를 하십시다.’

영어실력이 웬만한 사람도 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 기록의 내용은 간호사에게 ‘환자(Pt)의 혈압(BP)을 재고 소변(urine)과 응급혈액검사(Emergency CBC)를 하라’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의사들은 유난히 우리말보다 ‘그들만의 언어’를 즐겨 쓴다는 비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환자나 보호자들은 증상이나 처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도 일부 의사들이 영어와 라틴어, 한자, 일본식 표현이 뒤섞인 용어를 사용한다. 심지어 병명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보니 일반인들의 입가에 오르내리는 명의(名醫)의 기준이 변하고 있다. 예전엔 의학적 실력이 우수한 의사를 명의라 칭했다. 현대사회에서는 의학적 실력과 함께 환자의 상태를 우리말로 쉽고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의사를 꼽는다. 의료인들은 ‘환자가 있어야 의사가 존재한다’는 명제를 인식해야 한다.

의료인들도 고충의 정도가 심하다.

의사들의 ‘우리말 경시풍조’가 의도적이라 매도하긴 어렵다. 의사들은 의학용어를 우리말로 돌려 설명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대학 6년, 인턴·레지던트 6년 등 12년이란 장기간 동안 의학용어 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에 배 쉽게 바꿀 수 없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 환자는 의사가 아니다. 그들만의 언어를 계속 사용한다면 의료진에 대한 불신은 높아질 것이다.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것도 의사의 실력을 평가하는 항목 중 하나라고 인식한다면 해답은 쉽다.

<한성천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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