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의 한얼을 살리자
한옥마을의 한얼을 살리자
  • 이동호
  • 승인 2008.07.31 15: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북춘추 이동호
영과 육, 정신과 육체, 심신의 조화는 모든 사물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모습이다. 영이 없는 육체나, 육체를 상실한 영혼은 천상에서건 지상에서건 안식할 곳을 쉽게 찾을 수 없다.

수년 전에 페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가 주연으로 활약하여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한 로맨스 판타지 외화 ‘사랑과 영혼-Ghost’에 보면 육체에서 분리된 영혼이 지상에 남아 홀로 남겨진 애인을 보호하고자 몸부림치는 모습이 애절하게 그려져 있다. 아무리 지극한 사랑일지라도 몸을 잃은 영혼은 무력한 환상일 수밖에 없으며, 영혼이 없는 육체 역시 한갓 물질에 불과함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수작이었다.

근래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소통하는 일관된 패러다임은 문화-예술이다. 문화와 예술은 과거의 전통성을 현재에 적응할 수 있도록 창의적으로 계승하는 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역동적으로 창조하는 원동력이라는 점에 공감한다.

그럼에도 문화와 예술이 형식적인 겉치레에 머물거나, 생산성을 증대시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지역공동체의 경제적 관점 일변도로 접근함으로써 정작 중요한 정신적 요소의 계승과 발전에는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이를테면 어느 지자체건 우후죽순처럼 발생한 ‘문화제-축제’를 들여다보면 ‘어떤 볼거리를 동원해서 관광객을 끌어들일까? 어떤 사업을 하면 돈벌이가 될까?’하는 장삿속으로만 치중하는 것이 아닌가 염려스럽기도 하다.

이런 발상이 발전하여 순수하게 학생들의 대동제가 되어야 할 고등학교나 대학교의 축제에도 한 번 출연료가 수백만 원에서 기천만원에 이른다는 소위 스타들을 초청하느라, 축제 예산의 대부분을 할애한다니, 주객이 전도되어도 한참 뒤집어진 꼴이 아닐 수 없다.

육체적 활동만 있지 정작 중요한 정신적 지향점에 대한 성찰이나 탐구하려는 의욕적 사업은 찾기가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이번 우리 학교 축제는 어떤 정신과 문화적 지향성을 담아낼까? 이번 우리 대학의 대동제에서는 어떤 정신적 지향성으로 시대를 선도하고 지성의 전당으로서 면모를 과시할까? 우리 지역사회의 축제에서는 우리 고장의 어떤 정신적 문화를 강화하여 지역민을 통합하고 미래를 지향할까? 고민하고 탐구하는 자세를 엿보기 어렵다.

전주시가 강력하게 추진하여 전국적인 지명도가 높아가고 있는 한옥마을 사업에서도 아쉬움은 여전하다. 가시적인 한옥 가꾸기 사업은 일정한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이를 통한 관광객 유치에서 점정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한옥마을을 다녀간 사람들이나, 한옥마을 체험에 참여했던 사람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것은 생활과 활동 공간으로서의 한옥마을과 함께 전주한옥마을이 아니면 엿볼 수 없는 정신적 프로그램의 빈약함을 아쉬워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공간-건물로서의 한옥과 함께 그 공간에서 이루어졌을 문화-예술-정신으로서의 한옥마을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이를테면 <강암고택>을 정비하여 우리 정신문화의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선비정신’의 구현 장소로 삼는다면 공간에 영혼을 입히는 일이며, 전주시가 추진하는 정책 ‘한옥마을 스토리 발굴 작업’과도 상통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강암서예관> 동편에 자리 잡고 있는 아담한 한옥은 강암선생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하던 고택이다. 강암선생은 세계 어느 곳을 나들이하건, 또 세계적인 문화-예술인들을 만나건, 고아한 한복에 갓을 갖춰 쓴 모습으로 한국의 ‘선비풍모’와 ‘선비정신’의 실체를 보여주었던 분이다. 중국 남경대학의 막려봉(莫礪鋒) 교수는 강암선생을 뵙고는 ‘이미 중국에서도 볼 수 없는 전통 유학자를 뵙는 것 같다’며 깊은 감명을 받았음을 토로한 바 있다.(강암의 증외손 전북대 김병기 교수의 증언)

이처럼 강암고택은 그냥 ‘한옥’이 아니라, ‘한국의 얼’ 한얼이 살아 숨 쉬던 곳이다. 이런 곳을 발굴하고 보완하여 역사적 유물임과 동시에 정신의 맥을 잇는 곳으로 부활할 수 있도록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

우리가 계승해야 할 정신문화는 단연 ‘선비정신’이다. 한옥마을이 외형적 건물만이 아니라, 영혼이 살아 있는 정신마저 함께 아우르려면, 강암고택부터 복원해서 보존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