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교육감 선거 유감
전북교육감 선거 유감
  • 이수경
  • 승인 2008.07.2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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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북의 교육감 선거를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투표율 저조나 선거 무관심, 불법 선거 등과 같은 선거행위 때문이 아니다. 이념지향이나 정책지형에 따라 유권자가 신념에 찬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착잡함이다.

같은 시기에 치러지고 있는 서울시의 교육감 선거는 전북과 비교해서 매우 신선하다. 열화와 같은 서울 시민의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념과 정책의 뚜렷한 차이가 논쟁을 만들어내고, 선택의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의 핵심 쟁점은 지난 4월 15일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학교 자율화’ 조처에 관한 것이다. 보수지향의 후보들은 자율화 조처에 적극 찬성하면서 여기에 덧붙여 학생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설학원까지 끌어들이는 소위 민영화 조치까지 과감히 도입하려 한다. 이에 비해 진보지향의 후보들은 자율화 조처는 곧 학교 감옥을 만드는 것이며, 학생 자율을 철저하게 무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하고 있다.

여기에서 양 진영 정책의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념과 정책의 차이가 유권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지역 교육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전북의 교육 현황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복마전이다. 정부의 자율화 조처에 따라 일선 학교에서는 0교시, 야간 자율학습, 우열반 구성, 방과후 학교 사설업체 참여, 사설 모의고사 등을 자율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자율’이라는 화려한 수사보다 이러한 자율 선택이 가져올 파장에 있다.

지난 참여정부 교육개혁은 ‘교육기회’의 평등과 ‘학생’의 자율을 강조하였다. 0교시와 야간 자율학습은 학생 인권과 청소년의 건강권 차원에서 배제되었으며, 교육복지를 통해 저소득층과 학교밖 아이들, 다문화 가정, 탈북 청소년 등의 교육기회를 보장해주려 하였다.

그러나 보수진영은 경쟁력의 약화를 들어 평등의 허구를 공격하였다. 모든 학생을 끌고 가려다 대한민국 교육경쟁력을 망쳐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실용정부에 걸맞게 어떤 방식으로든 학생과 학교의 경쟁력만을 높이려 한다. 필요하면 0교시, 야간 자율학습도 도입하며, 학교에 우수한 학원 프로그램과 강사가 들어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빈부와 성적 차이에 따른 학생 분리교육도 실시할 수 있으며, 소수 엘리트를 위한 특목고, 자사고도 대폭 늘리려 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지향에 대해 진보진영과 학생의 반발은 거리의 처절한 촛불로 나타났다. 거리 외침의 핵심은 경쟁력의 신화가 학교 감옥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0교시부터 새벽까지 학생들을 몰아붙이는 경쟁력 교육은 학생을 공부기계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결정의 과정은 치열한 토론과 민주적 의사결정의 과정이다. 그래서 자발적인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선거정치를 통해 결정을 하는 것이다. 특히 교육정책은 자녀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기에 합의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선거정치가 더욱 중요하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적어도 이러한 선거정치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쟁점이 있으며, 토론이 있으며, 신념에 찬 선택이 있다. 교사가, 학부모가, 학생이 교육의 미래를 놓고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전북의 교육감 선거는 어떠한 가? 양 후보의 정책지향이나 이념지형은 전혀 차이가 없다. 정부의 교육 자율화 조처에 대한 찬반 쟁점도 없다. 오로지 차이가 있는 것은 교육현장 경험이냐 아니면 실무 행정경험이냐 여부이다.

이럴 경우 선거정치는 교육적 철학이나 소신보다 개인 이력이나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 전북 교육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치열한 토론보다 학연, 지연과 같은 개인 연줄만이 중요시된다. 심지어 정당이 교육선거에 끼어들기까지 한다. 이래서야 교육선거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

교육은 학생, 학부모, 학교, 교사, 지역이 모두 관계되는 복합체이다. 학교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지역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태체계다. 교육정책에는 정권의 강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교육감 선거는 이러한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에 치러진 전북 교육감 선거는 참으로 유감이다. 이제는 유권자가 나서서 새로운 교육선거의 의미를 찾아야 할 시점이다.


<김흥주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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