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를 바라보자
10년 후를 바라보자
  • 이한교
  • 승인 2008.07.15 15: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여 년 전 여름, 교회 청년들과 덕유산을 종주(삼공리→영각사) 했었다.

삼공리 주차장에서부터 장마철 장대비(이날 새벽 지리산에서 100mm 집중 폭우로 60여명이 숨지고 30여명이 실종 됨)를 맞으며 향적봉 대피소로 향했다. 몇 번인가 포기하려 했지만, 우린 몰아치는 강한 폭우를 뚫고 가까스로 저녁 8시경에 도착했다. 안은 비를 피해 온 등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통로는 비에 젖은 신발과 배낭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침상은 앉을 자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젖은 신발 더미 위에 주저앉으려니, 퀴퀴한 냄새와 그 끈적거림이 참을 수 없이 짜증나게 했다. 젖은 몸 그대로 쪼그린 체 잠을 청한다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지만, 저녁도 거른 체 뜬눈으로 밤을 새울 수밖에 없었다. 20여 평 남짓한 면적에 100여 명이 넘는 사람으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대피소 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10시쯤 되었을까. “우당탕….” 20여 명의 젊은이가 대피소 안으로 들어섰다. 오전에 영각사를 출발하여 온종일 걸어왔단다. 몹시 지쳐 있었다. 낙오자까지 발생했으나 중간에서 포기하지 못하고,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산행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모두 무사함에 대하여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이들의 무례함은 사람들을 더욱 피곤하게 했다. 그래도 좀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기다렸으나, 젊은 대학생들은 주변 상황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폭우를 뚫고 칠흑처럼 어두운 산길을 더듬듯 대피소까지 왔다는 기쁨을 표현하고 있었다. 감격스런 말투로, 마치 승리한 장군처럼,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서는 페트병의 과실주를 꺼내놓고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불편함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귀를 막고, 코를 막고, 온몸의 감각을 잃은 듯 죽은 시늉하며, 몸만 뒤척이고 있었다. 이유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거니, 아니 건장한 체육과 학생들의 위협적인 말투에 행여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아니면 누군가 말을 하겠지…….

그러나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먼저 조심스럽게 헛기침을 해보았다.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냥 쪼그린 채로 눈을 부치려 했지만 견딜 수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점잖게 “어이, 학생들 조용히 좀 하지”하고 타이르듯 말했다. 그러나 당신이 뭔데 분위기 깨느냐는 무반응으로 잠시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그들은 더 큰소리로 강한 어투로 사투리를 섞어가며 자기들의 얘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떨어져 나간 신발밑창 대신 옷소매를 찢어 밑창으로 삼고, 죽자사자 선배님 뒤를 따라왔다고 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느 여학생은 칠흑처럼 어두운 폭우 속을 선배님이 건네준 벨트 끝만을 의지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목이 멘 듯 말끝을 흐리자, 동지애 분위기 상승하고, 또 한 번 과실주 건배가 이어져 갔다. 그래도 사람들은 몸만을 뒤척일 뿐 말이 없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어이, 학생들 잠 좀 자자.” 날벼락을 치듯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서 학생들을 향해 질타가 쏟아졌다. 그리고 긴 침묵이 흘렀을까. 다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구시렁대기 시작했다. 이를 보다 못한 대피소 대장이 3,000원 내줄 터이니 밖으로 나가 자라는 소리에, 술자리를 접던 10여 년 전의 그 학생들이 문득 생각이 난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30대 초반의 나이일 것이다. 이들이 덕유산 종주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이웃을 무시하고 밤을 지새우려 했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지금의 심정으로 그 상황이라면 그 무례함을 다시 보일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요즈음 권력을 믿고 안하무인격인 사람들을 본다. 주인행세를 하려는 권력자들을 본다. 등 뒤에 칼(권력)을 숨긴 오만무도한 사람들을 보는 국민은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그래도 권위와 권력을 구분 못 하는 그들에게서 염증을 느끼는 것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행여 나라가 어찌 될까 염려되기 시작했다. 이러다 국민이 화가 나면…….

강산과 생각은 변한다. 지금의 생각이 전부인 것처럼 목숨을 거는 것은 극단으로 치닫는 어리석은 일이다. 10년 후를 바라보자, 서로서로 한발 짝 뒤로 물러서서 욕심을 버려보자. 나라의 미래를 위한 길이 보일 것이다.

이한교<한국폴리텍V김제대학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