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여성운동 20년과 삼계탕
지역여성운동 20년과 삼계탕
  • 박영자
  • 승인 2008.07.15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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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후가 초복인데 마치 중복을 넘어선 듯,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무더위 속 열대야를 보내고 다시 일터로 나서는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청량제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 만나게 되는 해맑은 미소, 다정한 연인으로부터 듣는 격려의 목소리, 미리 알고 챙겨 주시는 어머니의 음식 등. 이렇게 일상을 지탱해 주는 고마운 활력제가 있듯, 지난 20년간 전북지역 여성들의 삶이 조금이래도 더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 온 단체가 있다.

지난 10일 오후 2시 최명희 문학관에는 전북지역 여성운동 20년을 돌아보고, 진보적 여성운동이 나아갈 새로운 길을 묻는 토론회가 열렸다. (사)전북여성단체연합은 1988년 2월 전북민주여성회(민여회)라는 진보적 여성운동 조직으로 '여성운동의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계층별, 과제별 여성 부문조직을 건설해 나간다.'는 과제를 갖고 출발하였다. 여성노동자, 전업주부, 전문직여성, 청년 등 각계각층의 여성 100여명이 5년 동안 교육, 홍보, 투쟁, 연대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특히 1991년 남원에서 '21년 전 자신을 강간한 이웃집 아저씨를 찾아가 살해한 사건'(김부남사건)이 발생했을 때 김부남 대책위를 구성하여, 성폭력에 대한 개념조차 불분명 했던 시기에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전환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후 성폭력 방지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섬으로써 1994년 성폭력특별법 제정에 결정적 기여를 한 단체가 되었다.

부문별로 여성운동의 대중성 확보를 위해 전력질주 해 온 민여회는 부문 간 분산성과 고립성을 극복하고, 여성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1993년 3월 전북여성운동연합이라는 여성연합 조직으로 거듭 태어난다. 창립선언문에서 밝힌 것처럼 '성폭력과 여성노동권의 보장, 깨끗한 환경과 양성 평등한 세상,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인권을 침해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꾸준한 활동을 전개했다.

10년 동안 제도권 밖에 머물러 있던 전북여성운동연합은 1998년 (사)전북여성단체연합으로 개칭하고 보다 대중적이고 합법적인 조직으로서 도약을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방정부의 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다양한 정책개발과 '3.8 여성의 날 지역여성대회'와 7월 여성주간의 '전북여성한마당'과 '여성영화제' 등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면서 지역 시민과 소통을 실천하였다.

그 밖에 생활 속에서 여성의 복지와 인권을 챙기는 활동과 여성농민의 정치·경제·사회적 지위향상을 위한 투쟁을 통해 적극적 평화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평화·통일운동에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평화·통일 활동가 양성과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의 활동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지난 20년 동안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을 지역 내에 확산시키고 여성의 권익실현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해 오면서, (사)전북여성단체연합은 성년의 나이에 이르렀다. 언제 부터선가 전북여성단체연합을 후원하는 사람들은 매년 한 자리에 모여 활동가인 그들과 소통하고, 격려와 지원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곤 한다. 그렇다면 지역 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께서 이 단체에 깊은 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일까?

'평등과 평화'를 지향 해 온 지난 날 모습에서 우리의 '희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소통과 연대가 그동안 미흡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다.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단체나 조직과의 연대만을 꽤할 것이 아니라, 다소 보수적인 단체나 기관과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여성의제를 함께 만들고, 일상에서 의제가 실현될 수 있도록 파고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순경(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교수는 진보적 여성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여성 노동에서 찾으면서 성별, 계층, 나이를 초월한 '노동 공동체'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 삶의 터전 곁에서 우리가 보수층이라 일컫는 사람들에 의해 이미 많은 부분 진행되어 왔는지도 모른다. 삼복(三伏)의 시절음식인 삼계탕은 햇병아리에 인삼과 대추, 마늘, 생강, 찹쌀 등을 넣어 고은 것으로 기운이 떨어질 때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다양한 재료가 고루 섞여 음양의 조화를 이루면서 더위를 이겨내는 최고의 음식이 된 것이다. 전북의 여성들이 경계를 허물고 한 투가리에서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박영자(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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