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에 앙금 씻다
40년만에 앙금 씻다
  • 방선동
  • 승인 2008.07.1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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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간첩단사건'으로 등 돌렸던 위도주민 '화해 한마당'
대광형, 아우님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습니다.

이제 우리 마음놓고 그동안 하지못햇던 예기 터놓고 합시다.

태영호 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등을 돌렸던 위도지역 주민들이 40년 7일간에 걸쳐 마음을 열고 손을 잡았다.

10일 위도중.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위도주민 화해한마당'에는 김호수 군수를 비롯해 김성수 군의장, 진실화해위원회 김준곤 상임위원, 조병서 도의원, 김진태 수협장, 위도지역 사건관련자 등 200여명이 참여했다.

화해한마당에 참여한 위도지역 주민들은 그동안 여려웠던 세월을 삭히며 40년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내고 포옹하며 손을 꼭 잡았다.

친구와 이웃이면서 행여 간첩과 대화한다고 사법당국에 불려가 조사를 받을까봐 말도 못하고 모른채 했던 지난날이 오늘로 끝맺음을 한다는 감격에 주민과 당사자들은 눈빛으로 그동안의 고생을 훌훌 털어냈다.

가족이 간첩으로 몰린 후손들은 사회에 진출하고 싶어도 사상에 걸려 취업을 못하고 다른 직업을 택했으며 일부는 아에 고향을 등지고 타향으로 이사했다.

태영호 간첩단 사건으로 제일 많은 피해를 입은 강씨는 인사말을 통해'간첩아닌 간첩으로 40년간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고 '무죄협의를 받았으니 고향인 위도를 지키며 위도를 위해 희생할 각오로 생활하겠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나를 관찰했던 경찰, 제보자들도 오늘을 기회로 원망하지 않고 모두 용서하겠다'며 울먹였다.

태영호 간첩단 사건의 배경은 지난 1968년 7월3일 위도지역 주민들이 탄 배가 경기도 웅진군 연평도 근해에서 병태잡이를 하다 북한 경비정에 강제 납북됐다가 4개월만에 풀려난 사건으로 고문과 가혹행위로 조작된 인권유린 사건 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에서 밝혀낸 태영호 간첩단 사건에 연류된 피해자는 선장인 강대광(67)씨 등 8명과 간첩단사건 증인 50명 등 58명으로 현재 생존해 있는 사람은 납북자 4명과 간첩단사건 증인 30여명이다.

태영호 간첩단 사건으로 응어리진 위도지역 납북 선원과 주민들은 고기잡이배 승선을 거부당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40년이 넘도록 고통속에 생활하고 있다.

당시 태영호에 탑승했던 선원들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지배하에 있는 지역에서 어로작업을 하여 반공법 위반이 적용되어 징역 1년6월 및 자격정지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당시 납북 어민과 마을주민들은 수사과정에서 고문과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북한을 찬양.고무한 사실이 있다고 허위로 진술했다.

특히 수괴로 몰린 선장 강씨는 옥중에서 10년을 보냈으며 강씨의 어머니는 옥중에 있는 아들을 부르다 실명되면서 숨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피해자 강대관씨 등 5명은 2007년 전주지법 정읍지원에 재심을 청구했으며 정읍지청에서는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결정 사건기록을 송부했으며 9일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에 진실회해위원회는 권고사항을 통해 조업 중 납북됐다가 귀환한 어부들과 그 가족들을 연행해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받아 중형을 받도록 한 행위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가해자의 참회와 피해자.유가족간에 화해토록 권유했다.

부안=방선동기자 sd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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