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실패
오만한 실패
  • 조한경
  • 승인 2008.07.0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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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대학에 입학해서 한 학기를 외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의 아들, 그리고 나를 위해 쓴다.

‘내가 신이라고? 내가 신을 모르거나 아니면 내가 나를 모르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가 나를 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말은 자신과 신을 대등한 위치에 놓고 신을 비판하곤 하는 철학자들에 대한 파스칼의 반문이다. 몽테뉴를 제외하면 대체로 철학자들은 겸손이 부족했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들은 비판을 위해 산다. 세상을 향한 그들의 비판은 더욱 날카롭다. 물론 적당한 비판은 정신건강을 위해 나쁘지 않다. 그러나 비판이 비판만을 위한 비판만으로 일관해서 불평의 수준으로 전락한다면 나의 삶이 추해진다.

‘나는 어린 시절에 가난해서 당해야만 했던 수많은 수모와 경멸을 잊지 않은 덕에 마침내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귀여운 손자 손녀들은 나와 같은 그런 가난의 경험을 겪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오히려 걱정이다.’ 빈민굴에서 태어나 재계의 거물이 된 어느 기업가의 역설적인 이 말은 현실에 대해 비평과 불만만을 토로하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약이 되는 말이다.

불평과 불만은 근본을 보면 남과 나, 기대와 현실의 차이에 기인한다. 내게 불만과 불평이 쌓인다면 내 안에서 일차적 원인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남보다 못한 내 모습, 기대보다 못한 나의 현실이 나를 불평분자로 만들지 않았나? 실패자에게는 실패자의 기질이 있고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성공하는 습관이 있다.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자신의 내부로부터가 아니라 외부에서 찾는다면 그 사람은 실패자의 기질을 지닌 사람이다. 반면 성공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습관이 있다. 리쿠르트 인재개발 연구소가 내놓은 ‘신입사원이 성공하는 습관 99가지’ 중 인상적인 한 가지는 ‘자신의 자리는 자신이 만든다’이다. 이는 신입사원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세상에서의 자리도 내가 만든다. ‘나는 타고난 소질이 없다’, ‘나는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지 못 했어’, ‘나는 배우지를 못 했어’ 등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모를 탓하고, 배운 사람들을 비아냥거리면 나는 끝내 실패자로 남을 뿐이다. 비판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비판이 안으로 향해 나를 개선하려는 에너지로 승화한다면 나는 성공한다. 반면 그것이 세상과 남을 향해 던지는 불평이 되면 그 불평은 부메랑이 되어 오히려 내게 되돌아와 나를 친다. 나의 불행을 나 자신의 문제라기보다 상대나 세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주장은 때로 내 자존심을 지키려는 미숙한 자기방어에 지나지 않는다.

집에만 오면 화가 나는 사람은 ‘내가 사회에서 실패자가 아닌가?’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아내나 남편이 못나 보이고 미운 마음이 들면 나를 먼저 돌아보라. 내가 얼마나 잘났는가. 불평은 오만함에서 오고, 오만은 편견을 부른다. 불평 대신 침묵으로 나를 돌아보면 초라한 내가 보이고, 나는 겸손해진다. 이 때 겸손은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신의 무능 혹은 결함을 알고 느끼는 슬픔’ 같은 겸손이 아니다. 내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라고 개탄하면서 겪는 비탄이 아니다. 자신의 존재증명이 안 되는 비천함이 아니다. 이 때의 겸손은 비굴함, 비천함이 아닌 오히려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겸손이다. 인간 human 의 어원을 좇아가 보면 땅이라는 뜻의 라틴어 humus에서 기원하며 인간성 humanity 과 겸손 humility 도 같은 어원을 갖는다. 우리는 흙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인간은 겸손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겸손을 표현하는 두 가지 훌륭한 표현 수단이 있다. 하나는 존댓말이고, 다른 하나는 인사이다. 성공하는 99가지 비결 중 중요한 하나가 인사 잘 하는 것이다. 인사는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태도임과 동시에 ‘내가 당신을 알고 있으며, 당신의 인격을 존중한다’는 의미전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의 더 강한 수단이 존댓말인 것이다. 앙드레 콩트 스퐁빌은 ‘오르지 못할 위치에 오르려고 하다가 무시당하는 것보다는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상대를 얏잡아보면서 인사를 않거나 반말을 사용하면 나도 그렇게 대접받을 수밖에 없다.

조한경<전북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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