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참 한심한 사람들…
그 참 한심한 사람들…
  • 안완기
  • 승인 2008.07.04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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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소리도 아니다. 바로 이명박대통령이 “지난 3월 26일 40대 이모씨가 발로 차고 머리를 잡아끌며, 저항하는 초등학교 3학년 여학생을 질질 끌고 간 일산 초등학생 납치 미수사건”과 관련하여 공직의 핵심인 경찰에 대해 던진 말이다.

바로 3개월 전 이명박 대통령이 납치미수 사건 수사 독려를 위해 해당 경찰서를 찾아 수사관계자들을 질타하며, “그 참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하였을 때만해도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신뢰와 지지는 높았다. 국민의 선택에 의한 절차적 정당성과 국민을 위한 정책집행을 통해 나름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래에 이 말은 대통령이 경찰을 질타하는 소리가 아니라 국민이 권력 핵심부를 향해 던지는 말이 되었다. “한심한 정부, 한심한 청와대, 한심한 국회, 한심한 사법부, 한심한 검경, 한심한 언론” 등 권력 핵심 전반을 질타하는 말이 되었다. 선거 승리를 통해 확보한 공권력 집행권을 국민을 위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집권세력들에 대한 원망의 소리가 되었다.

현 집권세력은 쇠고기 문제로 촉발된 국가적 위기를 무책임 내지 잘못된 소신과 고집으로 일관하며, 이에 항의하는 국민의 평화적인 촛불 시위를 공익의 대변자인 검경을 통해 막음으로써 공권력의 정당성을 스스로 무력화시키고 있다. 잘못된 맹신과 비민주성으로 무장된 ‘참 한심한 사람들’이 국가발전에 기여하기보다 잘못된 정책집행으로 국가를 혼란으로 치닫게 하고 있다. 잡은 권력의 칼자루가 아니라 칼날을 잡고 고통스러워하며, 촛불시위 참여자들에게 원죄를 뒤집어씌우고 있는 실정이다. 하늘을 보며 “허(虛)”하고 웃기엔 참담한 정국이다. 국민이, 국가의 모든 자원이 서로 협력하여 하나 되어 간대해도 국가 위상을 높일 수 있는 확신이 없는 세상에서 반목과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으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명박정부 출범 후 지난 짧은 기간 동안에 국민을 향해 고개 숙인 두 차례의 뼈저린 반성이 말로 그쳐서는 안 된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우리 사회의 산소역할을 수행해야 할 경찰 공권력이 열두 살 초등학생을 연행하고, 야당 국회의원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명박산성을 쌓는데 동원되고, 시민을 향해 최루가스와 물세례를 쏘아 대고, 군화발로 시민들의 가슴을 멍들게 함으로써 불신의 대상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해외에서 이러한 광경들을 바라보는 이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참 한심한 나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권력자들이 ‘그 참 한심한 사람들’이 되지 않고자 한다면 다음 점들에 대한 명백한 해명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여 국가 경쟁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쇠고기 재협상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국가적, 국민적 이익이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국가적 혼란, 국민적 불신과 좌절감을 상쇄시킬 만큼 큰 것인가? 현 상황에서 재협상을 하지 않는 것과 하는 것 중 어느 것이 한국경제를 더욱 위기에 빠뜨리는 것인가?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야만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가능하며 국부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인가? 심지어 시민은 물론이고, 종교계로부터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의 참회를 촉구하는 시국법회”, “폭력정권규탄 기독교 행동주간”을 선포하는 대상이 된 것이 이명박정부의 유지와 국익에 더 보탬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최소한 마지막 물음에 대한 확실한 해답은 나와 있다. 이명박정부는 국민의 이익과 행복을 추구하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정책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으면 된다.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을 머슴답게 주인인 국민을 위해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머슴이 주인의 말을 듣지도 않고, 주인을 위해 행동하지도 않는 ‘그 참 한심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으면 좋겠다.

안완기(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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