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취럽’ 부인의 옷장
‘매취럽’ 부인의 옷장
  • 김진
  • 승인 2008.06.12 2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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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옷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옷장에 옷이 꽉 차있더라도 예쁜 옷만 보면 또 사는 심리가 있는데, 이러한 심리를 ‘매취럽 부인의 옷장(Mrs. Machlup′s wardrobe)’이라고 얘기한다.

최근 들어 늘어나는 동북아국가들의 외환보유고를 보면 매취럽 부인의 옷장에 견줄 만하다.

IMF당시 놀랬던 솥뚜껑이라 그저 많을수록 좋은 줄 알고 있는 것이 외환보유액이다.

하지만 과도한 외환을 보유하자면, 보유 규모만큼의 금융비용과 환차에 따른 리스크를 안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이 지난 몇 년 동안 큰 적자를 내고 있는 이유도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환율을 관리하기 위해 발행한 통화안정증권(통안채)에 대한 이자비용 및 환차손 때문이었다. 사실 통안채의 경우에는 물가안정이 목적이지만, 최근의 매카니즘은 외국환평형채권(외평채)과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내막을 보면 재경부는 외평채를 발행한 돈으로 외환을 사들이게 된다. 그리되면 시중에는 원화가 너무 많이 풀려 유동성 확대로 인한 물가인상이 우려되는 것이다. 이때 한국은행은 통안채를 발행하여 다시 돈을 거둬들이게 된다.

이는 결국 통안채로 외환을 사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매카니즘을 볼 때 과도한 외환보유액은 유동성확대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우려 될 뿐만 아니라, 많은 채권에 대한 이자부담 역시 조세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옷장의 옷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지금 외환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중국이다. 4월말로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선진 7개국(G7)의 외환보유액을 합친 것보다 많아졌으며, 그 규모는 약 1조8천억 달러에 이른다.

여기에다 국제환시장을 교란시키는 유동성 단기자금인 핫머니의 유입이 늘어나, 올해만도 6500억 달러를 넘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니, 이제 중국은 외환보유액 3조 달러 시대를 넘보게 되었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3천~4천억 달러 정도의 외환을 보유하면 적정하다는 보고가 있다.

또 1조 달러를 넘긴 일본 역시 2천억 달러 정도면 적정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젠 우리도 옷장에 어느 정도의 옷이 있으면 적정할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듯싶다.

국부펀드에 눈떠야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외환은 단기적인 지급결제수요에 대비한 자금이고, 정부가 주도하는 기관에 의해 운용되는 국부펀드는 국가자산관리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4월말 현재로 우리 정부가 보유한 외환은 2604억 달러이다. 그 외환을 보유하기 위하여 발행한 통안채의 규모가 150조원을 넘어섰고, 그에 따른 이자비용만도 연간 8조원에 이르고 있다.

물론 외환위기를 통해 유동성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겪은 한국이지만, 상황이 그때와는 다르다.

외환위기 때는 경상수지 적자규모가 GDP의 5%대였지만, 지금은 정부 예상치 대로 70억 달러 적자에 이른다 해도 GDP의 1%가 채 되지 않는다.

이는 외환을 안정성과 유동성 위주의 운용에서 탈피해 국부펀드에 눈 뜰 필요가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 자유화로 인해 경제상황이 급변했는데도, 이명박 정부의 경제 관료들은 여전히 10년 전의 방식으로 외환시장을 조정하려 한다는 지적이 있다.

혹 그들이 <잃어버린 10년>의 세월동안 급변하는 세상을 등지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리 진보의 흔적을 지우고 싶더라도 10년 전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다시 한 번 국민을 걱정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김진<경희대 무역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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