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1(하나)’
숫자 ‘1(하나)’
  • 소인섭
  • 승인 2008.06.1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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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나) 이라는 숫자는 아주 간단한 수 같지만 알고 보면 무척이나 신비한 수이다. 왜냐하면, 1은 모든 수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수이며, 또한 어떠한 다른 수로도 나누어지지 않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초수학이라는 백과사전에서는 1을 소개하는 데만 무려 200여 쪽을 할애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1을 정의하는데 고심하다가 결국은 1을 수에서 제외시키기로 결정했다는 기록도 있다. 왜냐하면 1 이란 수는 마치 양파처럼 다른 모든 수를 그 안에 품고 있는 특이한 수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최초의 홀수는 1이 아니고 3이었다고 한다.

신비주의가 융성했던 중세에는 1(하나)을 하나님을 상징하기도 했다. 고대 이슬람 국가에서는 99까지만 세도록 규정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100 이란 숫자를 만드는 나머지 1은 신의 수라는 것이다.

숫자 1은 99에 대응하는 신성한 수로 이것을 더해져서 비로소 100이라는 완전무결한 수를 만든다고 한다. 그러므로 다른 수들은 완전한 숫자 1로부터 멀어지는 불완전한 수로 간주되었고 1에서 멀어진 최초의 수인 2는 죄악을 의미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하나님이란 1은 오직 하나 또는 유일이라는 것을 존칭해서 하나님이라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 조상은 1, 3, 5, 7… 등의 홀수를 양의 수라 하고 2, 4, 6, 8… 짝수를 음의 수라고 생각하여 양의 수는 밝고 높고 따뜻한 것으로, 음의 수는 어둡고 작고 낮고 서늘한 것으로 생각하여 달력에 양이 겹치는 날을 명절로 정하였다고 한다.

양의 날들이 겹친 중양절인 1월 1일은 설날, 3월 3일은 삼짓날, 5월 5일은 단오절, 7월 7일은 백중, 9월 9일은 중제 11월 11일은 동지 등으로 정하여 경사스러운 날로 의미를 주었다. 그러나 짝수가 겹치는 2월 2일, 4월 4일, 6월 6일, 8월 8일, 10월 10일, 12월 12일 등은 불길한 날이라 하여 의미를 주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중국인들은 10월 10일을 쌍십절이라 하여 경사스러운 날로 친다.

서양에서도 수에 의미를 부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피타고라스는 어떤 수가 자신을 제외한 약수의 합이 그 수 자체가 되는 수를 완전수라 하였다. 이를테면 6의 약수는 1, 2, 3, 6인데 자신을 제외한 약수 1+2+3=6이 되므로 6을 완전수라 한다. 6 다음의 완전수는 28이다. 28의 약수는 1, 2, 4, 7, 14, 28이며 1+2+4+7+14=28이다. 그래서 최소의 완전수는 6이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6일 동안에 창조했다는 식으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고 달의 공전주기인 28일에 두 번째 완전수의 의미를 부여하고 28살에 결혼하면 평생 동안 행운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숫자가 커질수록 완전수는 드물게 나타난다.

세 번째 완전수는 496이며, 네 번째 완전수는 8128, 그리고 다섯 번째 완전수는 33,550,336이고 여섯 번째 완전수는 8,589,869,056이다. 피타고라스는 완전수의 약수들의 합은 완전수 자체와 같다는 것 이외에도 완전수는 여러 가지 특유의 성질들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냈다. 그 중 하나로서 완전수는 항상 연속되는 자연수의 합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즉, 6=1+2+3, 28=1+2+3+4+5+6+7, 496=1+2+3+4+5+6+…+30+31, 8128=1+2+3+4+…+126+127, …이 된다는 신비로운 사실이다.

이와 같이 동 서양이 생각의 내용은 비슷하지만, 서양 사람들의 수에 대한 생각은 과연 완전수는 몇 개나 있을까? 또는 그 완전수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등등 많은 생각을 하는데 반해 동양인들은 수들 사이에 관계보다는 그 수가 표현하는 의미만을 따지는데 생각을 집중하였다.

우리를 곤란케 하는 수는 뭐니 뭐니 해도 0 이다. 처음에 0 을 사용할 때는 혼동을 피하기 위한 구별의 의미밖에는 없었다. 예컨대, 11과 101은 0 을 넣어 두 수의 차이를 구별했다. 그러나 인도의 수학자들은 0 을 1과 2가 고유의 수인 것과 마찬가지로 0 역시 엄연한 수로서 아무것도 없음을 나타내는 수로서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전혀 구체화 시킬 수 없었던 무의 개념을 0 의 등장과 함께 비로소 실제 기호로 표현할 수 있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0 의 등장은 그리 혁명적이지 않는 사건일 수 있다. 그러나 무한대라는 개념을 만든 것이 0 이며, 수학에 무한 개념을 선물로 준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 0 으로부터 온 것이다.

김인수<전북대 수학통계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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