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팬들을 의식하라
백일장, 팬들을 의식하라
  • 김은희
  • 승인 2008.06.1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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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문학평론가·전주공고교사>
지난 4월 중순 군산벚꽃예술제 백일장을 시작으로 모두 9차례 학생들을 데리고 백일장에 다녀왔다. 6월에도 두어군데 더 나갈 계획이지만, 성적은 좋지 않다. 딱 3군데서만 학생들이 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이며 50대 중반에 접어든 나로선 학생들 수상여부에 따라 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특히 참가학생 누구도 장려상조차 받지 못했을 때 솟구치는 자괴감이 제법 심하다. 아무래도 ‘은퇴’할 때가 된 듯싶다.

그러나 백일장 지도교사에서 은퇴하더라도 몇 가지 아쉽게 느낀 점은 지적해야 될 것 같다. 말할 나위 없이 주최 대학이나 단체의 더 나은 백일장대회를 위해서다. 아니 많은 비용을 쓰며 좋은 일 하는 대학이나 단체들이 학생들로부터 욕 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먼저 짧은 시간에 학생작품을 정확하고 꼼꼼하게 제대로 보냐는 것이다.물론 심사관점의 차이야 있겠지만, 문학평론가인 내가 보기에 꽤 잘 쓴 학생 시도 번번히 장려상조차 받지 못했다. 전문계고 학생이라 ‘역시 나는 안돼’ 하는 열패의식에 빠져들까봐 나로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다음은 약속지키지 않기다. 5월 18일 실시한 백일장의 경우 5월말 심사결과 발표를 약속했는데, 5월 31일 자정까지도 고등ㆍ대학ㆍ일반부 입상자를 알 수 없었다.

같은 단체가 실시한 청소년문학상의 경우 팜플렛에 공지한 시한을 무려 10일이나 앞당겨 마감해버린 적도 있다. 동안 준비해온 학생의 응모가 무산되었고, 그를 달래는 나는 때아닌 곤욕을 치러야 했다.

약속지키지 않기의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전주권 어느 대학교는 공문에 기념품 제공을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연필 한 자루 주는 걸로 때웠다. 순천의 어느 대학은 기념품을 교수들이 펴낸 저서로 대신했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 기념품도 그랬다.

그뿐이 아니다. 그 대학교는 1ㆍ2등상 아래의 상품은 모두 교수들이 펴낸 시집이나 소설집 따위로 수여했다. 상 받는 학생들 눈높이와 상관없는 그들만의 자의적 잣대는 시상품에서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상장은 좋은데 쓸모없는 상품이라면 수상의 기쁨이 반감되는건 정한 이치다.

수상의 기쁨이 반감되는 대표적 사례는 따로 있다. 공모전을 통한 모단체에선 자전거ㆍ인라인스케이트ㆍ쌕 따위 무슨 회사 이벤트에서나 있을 법한 상품을 글짓기 부상으로 주고 있다. 장원ㆍ차상 등 큰상을 받은 우리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문화상품권이 부상인 장려상 받는게 낫다고 말한다.

어느 대회에선 백일장을 치른지 달포가 되도록 발표가 없다. 시상식은 번거로워 생략하더라도 입상 내역은 심사가 끝나는 대로 알려줘야 맞는게 아닌가. 등위가 어떻든 상을 받는 학생들의 설레임ㆍ기다림 등을 생각지 않는 백일장이 아니었으면 한다.

기가 막힌 것은 상장의 인적사항을 볼펜으로 적는 문학단체의 경우이다. 학생 입장에선 커버 없는 상장의 경우 코팅까지 해가며 간직할 소중한 상장이다. 그걸 주는 주최측이 볼펜으로 학교와 학년, 이름을 써 상장의 위엄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으니 할 말을 잃는다.

요컨대 백일장이든 공모전이든 팬들(학생들)을 의식하라는 것이다. 적은 예산 타령 등 주최측 변명이야 있겠지만, 좋은 일하며 학생들이나 지도교사로부터 욕 먹는 백일장이나 공모전이 되어선 안될 것이다.

대학의 경우 학교 홍보차원에서도 실시하는 백일장일텐데, 오히려 인상만 흐리게 된다면 아예 하지 않는게 낫다. 하긴 지도교사 차량에 주차료를 부과하고,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이른바 문인 소개에 1시간 가까이 할애하는 백일장도 있으니, 위의 사례들은 양반인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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